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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곧 부처인데

장백산-1 2016. 2. 17. 12:30

 

중생이 곧 부처인데

 

법상 스님  |  
beopbo

 

우리가 세상 만물을 볼 때, 그것들이 온전히 觀察 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무 편견 없이 판단 분별 없이 보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우리가 날마다 보는 對相을 봐서 잘

안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런 앎은 그 對相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認識해서 아는 앎이 아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내 안의 인식이 만든 앎
분별과 집착을 끊어내면  衆生心이 佛心임을 알아


우리가 어떤 것을 ‘본다’고 할 때 사실은 바깥의 대상을 直接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보자마자

내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그 대상과 비슷한 過去의 記憶을 검색하여 내 인식에 비추어 보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가 외부 대상을 본다고 할 때 사실은 내 안에 있던 記憶들을 들추어내어 재

상영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바깥의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안에서 妄想 分別로 걸러낸

그림 속 대상일 뿐이다. 즉 내 마음 속에 바깥 대상의 映像이 찍히는 것을 분별 망상으로 여과시켜

보고 그 映像을 외부에 있는 對相이라고 錯覺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안으로는 나라는 실체적인 自我가 존재하며, 바깥으로는 독립적인 규범을 따르는

實體的인 外部世界가 고정된 實體로 존재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바깥의 외부세계 모든

것들은 自體의 性稟이 없으며, 다만 因緣 따라 말미암아 일어나고 말미암아 사라지는 緣起的인

존재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實際的으로 태어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같은

事實을 경전에서는 本來 나지 않는다고 하여 불생(不生) 혹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말한다.

 ‘金剛經’에서는 이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이라고 하여 一切의 모든 조작된 존재

는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 번개와 같이 허망할 뿐

인 것들 이라고 했다.

이처럼 내 바깥에는 실체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론 내 안으로도 ‘나’라고 할 만한 固定된

實體는 없다. 이것을 무아(無我)라고 말하는 것이다. 보는 자도 보여지는 대상도 모두 텅~비어

空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깥에 있는 대상들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만나고 경험해 안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부터라도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들을 過去의 記憶에 걸러서 思量分別, 比較判斷 對照

해서 알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生覺과 비교분별 판단해석으로는 그 어떤 한 대상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생각과 분별이 딱 끊어진 자리 즉,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은 天眞한

시선으로 분별 판단 치우침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 無分別의 觀察, 그것이 바로 八正道의 정견

(正見)이다.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正見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에 있는 ‘나’라는 相과 밖에

있는 ‘세상’이라는 相 즉, 我相과 法相 그  어디에도 執着하지 않고 나누지 않는 텅~빈 시선으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옳바르게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보는 쪽도 보이는 대상도 모두 空하여 허망한 가운데, 인연 따라 허망하게 생겨나는

業과 報의 作用을 보고 그것들을 實體인 줄 誤認하면서 허망하게 그것들에 執着하며 아옹다옹 하며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보고 경험하여 안다고 여긴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만 마음거울이라

는 텅~빈 虛空 같은 참 性稟 위에 신기루처럼 나타난 꿈 그림자일 뿐인 것이다.

이제 이렇게 나와 세상을 執着할 것이 없으며, 내가 안다고 여겨왔던 對相도 나라는 自身도 모두가

固定된 實體가 없는 虛妄한 業報의 변화무쌍한 波動하는 에너지의 흐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안다는 데 집착하지도 않을 것이고, 내 앞의 대상들을 대충 흘려

보지도 않을 것이며,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마음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나아가 이렇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듯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하나

뿐인本性 즉, 空性이라는 大洋 위에 因緣 조건 상황 환경에 따라서 드러난

물결과 같은 것임을 알아, 물결이 곧 바다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波水不二

水波不二). 衆生心이 곧 佛心이며, 생사가 곧 열반이고, 無明이 곧 智慧

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있는 이대로,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로 本來부터 이미 온전하고 완전한 부처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1331호 / 2016년 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