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꿈 이야기 셋 '師拳, 스승의 주먹'

장백산-1 2016. 3. 24. 16:31

꿈 이야기 셋  '師拳, 스승의 주먹' |몽지와 릴라  
유당 |2016.03.24. 10:11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F9lO/1540     

 

  
꿈 이야기 셋  '師拳, 스승의 주먹'
 

세존께서 우기 안거에 들었을 때입니다. 심한 질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설 정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존께서는 질병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병이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아 처소에서

나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이때 존자 아난다가 세존께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아내셨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세존께서 병이 드셨기 때문에

실로 저의 몸은 마비되고 제 앞은 캄캄하고 가르침도 제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의 승단을 위해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기

전에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안심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안팎 없이 감춘 것

없이 가르침을 다 설했다.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師拳)은 없다. 아난다여,

如來는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간다'라든가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수행승의 승단에 관하여 더 이상 무슨 말을 언급할 것인가?"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아난다여, 나는 지금 늙고 노쇠하고 만년에 이르렀으며 내 나이 팔십이 되었다. 아난다여, 예를

들어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의지하여 가듯이, 여래의 몸도 가죽끈에 의지하여 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삼아 자신을 의지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해야지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만약 이와 같다면 그들은 누구라도 배우고자 열망하는

나의 수행승들, 최상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쌍윳따 니까야 제47 쌍윳따 '질병'

 

사권(師拳)이란 스승의 주먹이란 뜻입니다. 스승은 죽을 때 그의 깨달음이나 최후의 비밀을 손바닥에

적습니다. 그리고 上首 제자를 불러 주먹을 펴서 손바닥에 적은 것을 보여줍니다. 상수 제자는 스승의

주먹에서 최후의 비결이나 깨달음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와같이 사권 즉 스승의 주먹을 보았다는

것은 곧 교단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대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권은 부처님 당시 여러 수행

교단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법의 정통성을 전하는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이에 아난존자도 석가모니부처님이 연로하여 병들어 임종이 가까워지자 부처님께 사권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한 '나에게 사권은 없다'는 말씀은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놀라운 가

르침이었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스승의 비밀한 뜻이나 비범한 능력을 믿고 의지하여 공부하는데 부처

님께서는 자신만 특별하게 가진 비밀한 뜻이나 비범한 능력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행을 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스승은 나와 다른 특별한 안목이

있고, 특출난 능력이 있으며, 나와는 다른 비범함을 가지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몸짓이나 행동이나 가리켜 보이는 데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이것이 어우러져 스승은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스승의 아우라를 느끼며 스승을 삶의 지표로 삼습니다. 법을 가리키는

몸짓이나 손짓에 자기가 보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여겨 그것을 깨닫겠다는 마음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참된 스승에게는 特別한 암목, 능력, 비범함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승의 주먹은 제자가 만드는

것입니다. 스승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 누구나가 갖추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제자들에

게 가리켜 보이려고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하고 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는 제자들은 스승이 손을 쥐었다 폈다를 할 때 손바닥 안에 제대로 보지 못한 무엇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 보일락 말락한 막막한 것들을 가지고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고 도리를 만듭니다.  그러나

스승의 손바닥은  아무것도 없이 텅~비었습니다. 만약 거기에 특별한 물건이나 적혀진 무엇이 들어

다면 그것은 眞實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승이나 상수 제자만이 갖는 것이라면 그것은 眞實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眞實이란 누구에게나 平等해야 합니다. 스승뿐 아니라, 제자 그리고 스승과 제자라는 특별한

관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본래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어야 眞理입니다.

 

스승에게는 아무런 특별한 뜻이 없습니다. 이 아무런 뜻 없는 것을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려고 그냥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뿐입니다. 스승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에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어떠한 뜻도

없기에 모든 일이 인연 따라 장애 없이 아무런 막힘이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만물, 우리들,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사람이 상상하는 그러저러한 고정된 실체가 따로 있다면 그 내용

물에 가로막혀서 온갖 일이 自然스럽게 生成消滅 生住離滅 成住壞空하는 循環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저 들판에 핀 꽃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

들에 핀 꽃처럼 온 세상은 이 하나의 自然스러움일 뿐입니다. 비교하고 分別하고 헤아리고 따져서

볼 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복잡하고 불합리하고 갈등 투성이고 고통의 결정체처럼 보이지만 實際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본래 이미 없기 때문에 자유이고 단순하며 지극한 자연스러움이고 아무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단지 자기 마음 안의 일임이 분명할 때 이 自覺은 찾아옵니다.

 

지금 당장 마음 안팎의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렇게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마음 하나로 나와 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드러납니다. 이 마음 하나로 온 세상이 드러납니다. 이 마음 하나에서 생각과 감정과

사물이 드러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이 텅 ~빈 바탕 마음 이 하나의 작용입니다. 이 실체 없는 이것 하나가

살아서 온갖 춤을 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