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텅~빈 충만을 읽고 | 법정스님의 글
유당| 2016.05.15.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IO8W/1670
법정스님의 '텅빈 충만'을 읽고
법정 스님의 영혼을 적시는 책들 중에 이 '텅~빈 충만"은 처음 읽어 보았다. 한참 책을 쓰실 때는
별로 무관심하였던가 싶어 조금은 죄송스런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은 스님의 수상록중에서 당신이
주로 몸담고 있는 승가의 안뜰과 사바세계에 대한 사회적인 소견이 다소 많이 피력되고 있는 점이
다른 책과 다르다. 또한 산사에서 홀로 머무는 동안 느끼는 소회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산에 오면 우선 사람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한다. 되지도 않는 말 장난에서 입 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마음 밖으로만 팔았던 눈과 귀와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저 활짝 열린 텅~빈 마음, 無心, 無分別心으로 지금 여기 현존의 둘레를 바라보면서 쉬어야 한다.
복잡한 시비 분별하는 망상 번뇌 생각인 분별심 분별의식 일랑 그만두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밖에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 더 필요하겠는가.>
- 32쪽 (물 흐르고 꽃 피어난다.)
언젠가 찾아와서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이 어디냐고 묻는 젊은 학생에게 "네가 서 있는 바로 지금 그
자리가 수류화개실이다!" 라고 대답했더니 어리둥절하더라는 스님의 말씀이다. 水流花開室 즉,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이 어디이겠는가? 굳이 산에서만 꽃이 피고 산에서만 물이 흐르는 곳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다. 사회생활을 하는 도시의 시멘트로 지어올린 시멘트 공간의 숲에서도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어디서나 그 삶의 현장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그 둘레에는
늘 살아 있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이것은 사람이 할 탓이다. 내 주변을 깨끗이 하지도 못하면서 맑은
물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운 삶은 어디
서든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지금 여기의 현실을 더욱 열심히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 뿐이 아니겠는가!
<이제 내 귀에는 대숲에서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계곡물 소리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흐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텅~빈 방에 홀로 앉아 있
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분하다. 텅 비어 있는 방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하다.>
- 86쪽 (텅빈 충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너무 많아서 걱정이고 성가신 경우가 많다. 승가의 스님들처럼 너무 비우고
살아갈 수야 없겠지만 우리 방안에 실은 필요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이미 읽어버린 책이며, 입다 놔둔
옷이며, 필요없는 가구며, 오래된 주방기구 등..한 때는 필요해서 장만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공간과 자리
를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가끔은 한 두번 씩 집안의 물건들을 치울 필요가 있다. 아끼다가
못입는 옷도 과감하게 처분한다든가, 읽은 책들도 아끼는 책 말고는 집안에서 배출하여 집안을 좀 텅빈 공간
까지는 아니더라도 훌쭉하니 다이어트할 필요가 있다. 텅빈 공간은 심플한 생활의 지렛대가 되어 줄것이다.
적어도 見物生心이라고 물건을 보자마자 사버리는 습관만이라도 버려야 하겠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 만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래서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도
하지 않는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말 수가 적어야 한다. 생각대로 불쑥불쑥 나오
려는 말을 안으로 꿀꺽꿀꺽 삭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
- 159쪽 (불란서 여배우)
"불란서 여배우"란 '불여우'를 희화한 말이다. 그만큼 절에서도 말이 많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비단
절이나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아무 생각도 없이 불쑥 불쑥 내뱉는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깊이 생각해서 말을 해도 남에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함부로 내밷는 말이야 오죽
하겠는가? 흉보는 말은 신중해야 하는데 자신을 흉보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문제다.
<마음(心)이 부처(佛)일 뿐 아니라, 마음이 또한 법(法, 眞理)이고, 마음이 또한 중생,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이고, 달마 스님이 멀리서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이 땅에까지 오신 뜻도 바로 이
마음일뿐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佛法을 마음 밖에서 찾으면 헛일이라는 것이다. 시작도 이 마음이고
끝도 이 마음이다. 사는 것도 이 마음의 일이고 죽음 또한 이 마음의 일이다.>
- 264쪽 (평생의 양식)
마음이 부처(心卽是佛)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독자는 이 어려운 말의 뜻을 다음과 해석해 보고자
한다. 부처란 실상이 아니고 부처란 마음을 어떻게 갖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해
본다. 생각(意) 의식(識) 마음(心)은 바로 말과 행동의 중심이며, 말과 행동은 이 세상을 맑게도 하고
흐리게도 하는 요물이 아니던가? 마음이 바로 서고 중심이 잡혀 있다면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요 극락이
아니겠는가!
<언론은 그 사회의 공기公器이고 또한 공기空氣와 같다. 언론이 公器이기 때문에 良識이 전제되어야
하고 거기에 수반되는 책임이 따른다. 언론은 또한 그 사회의 空氣와 같기 때문에 흐리면 숨이 답답하고,
결핍되면 그 사회 전체가 질식하게 된다. 의무를 등지거나 무책임한 언론의 횡포는 단연 배격하고 용납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회의 공적公敵이기 때문이다.>
- 319쪽(언론과 정치)
출가한 스님들은 흔히 심산유곡에서 修道만 일삼는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실제 그런 스님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 종교라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법정 스님은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당신의 의견을
유감없이 피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 분은 현실참여형 스님이라 할까? 언론의 정경유착을 꾸짖는
스님의 말씀에 절대 공감이 가기도 한다.
<무와 배추 씨가 움이 터 오른 김장밭에 철망을 둘러쳤다. 떡잎이 자라 오를 만하면 꿩들이 내려와
심술을 부리듯이 헤집어놓는 바람에 해마다 어지간히 속이 상했다. 그리고 산토끼들도 와서 김장밭을
망쳐놓기 일쑤다. 먹이(채소)를 가지고 짐승과 다투느라고 철망을 쳐야 하다니,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 379쪽 (모년 모월 모일)
하루 한 생각, 그날 한 일에 대해서 짧은 일기형식으로 쓴 글이다. 누구든 일기를 쓴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날마다 한 가지씩 일이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기는 쉽지 않다. 어리고 젊었을 적에는 독자도 일기를 몇
년이고 써본 일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는 바쁘다는 핑게로 일기는 절필했다. 단순한
업무일지는 써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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