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見 知識 見解의 어리석음을 끊을 뿐
진리(법,깨달음)에 있어 方便이나 手段으로 사용하는 言語란 約이기도 하고 毒이 되기도 합니다.
本性의 세계에는 言語도 없고 文字도 없고 是非 分別하는 生覺 妄想 意識 마음도 없습니다.
이같은 事實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온갖 말(言語)를 방편으로 동원합니다.
本性의 세계로 이끄는 방편상의 말에는 여러 가지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 하나라는 말로 본성의 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텅~비었다는 말로 본성의 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뿐이라는 말로 본성의 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의 의식일 뿐임으로 分離된 둘이 아니라는 말로 본성의 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온갖 세상만사는 오직 마음(의식)이 짓고 오직 의식(마음) 하나일 뿐이라는 말로 본성의 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本性의 세계는 우주삼라만상만물의 바탕이어서 여기에서 온갖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말로 본성의 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성의 세계로 이끄는 모든 방편 수단의 말은 이런 결정적인 견해를 갖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눈앞에 드러나는 모든 것들을 따로 따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보고 그렇게
따로 서로 분리되어서 떨어져 있다고 보는 그런 지견 생각 견해 지식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에게 그런 虛妄한 幻想의 감옥,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는 말입니다.
法은 마음도 아닙니다. 세상만사가 텅~비었다는 말이 깨달음이 아닙니다. 고정된 법의 성품이 바로
지금 이것이라고 딱 定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네가 하나의 意識임으로 平等하다는 見解는
그야말로 벗어나기 힘든 알음알이이고 잘 속는 妄想, 幻想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나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텅~비었다고 여긴다면 妄想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짓는다는 見解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구속하는 쐐기풀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할 것이 따로 없는데 깨달은 사람도 없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見解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見解 知見 知識의 수풀속에서 훌쩍 벗어나 자유자재로 견해의 수풀속을 누비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굳이 말로 표현할 것 같으면 어떠한 見解 知見 知識도 갖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내세울만한 理致와 知識 知見 見解가 아무것도 없이 비워졌을 때 바로 그 때 우리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本源 自性 즉, 본성의 세계가 스스로 저절로 아무런 장애 없이 드러납니다.
본원 자성, 본성의 세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이며, 의지할 곳 없는 존재의 無限한 擴張입니다.
本來 그러한데 분별의식 분별심이 본성의 세계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체감할 뿐 결코 드러내
보일 수 없는 精神世界가 본성의 세계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 그것에 해당하는 생각이나 상태를 갖게
하기 위해 이끄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설법을 듣더라도 들은 것도, 안 것도, 이해한 것도,
남겨진 것도 아무것도 없다면 바르게 法門을 듣는 것이지만, 법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겨져 있다면
오히려 허망한 見解만 늘어나는 꼴입니다.
知識 知見 見解 分別 妄想 生覺 즉, 分別心 分別意識을 몽땅 내려놓으십시오. 들은 말, 안 말, 배운 말,
느낀 것,....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을 때 무엇입니까? 장마를 몰고 올 바람이 후텁지근합니다.
이 무슨 장애가 있습니까?
- 릴라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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