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상처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장백산-1 2016. 7. 30. 18:40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14. 낙과로부터 배우다     상처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김용규  |  happyforest@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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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26  14: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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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장맛비가 숲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이 숲에 쏟아진 이번 비는 비교적 집중적이었고 세찼습니다. 덕분에 이곳 여우숲으로 올라오는 길 여러 곳이 험하게 망가졌습니다. 숲길을 뒤덮은 나뭇가지에 세차게 쏟아진 비는 가지 끝을 따라 떨어진 빗방울을 따라 길 한 복판에 새로운 도랑을 만들었고, 흙이 무너지면서 길 가장자리 배수로가 막힌 지점은 길로 물이 넘쳐 그 길의 허리가 끊기기도 했습니다. 휴가철 여우숲으로 찾아올 사람들을 생각하면 저 길을 다시 복구하고 배수로를 내야하니 쏟아야 할 비용과 노동이 막막합니다.

이번 비가 던지고 간 고난이 내게만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밭 언저리에 심어둔 감나무들은 아직 더 통통해지고 여물어갈 틈을 충분히 갖지 못했거늘 가을날의 붉은 결실로 연결하려했던 제 소중한 감을 후두둑 잃어버렸습니다. 여우숲의 아름다운 건물 층층나무관 앞에 당당히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역시 제 소중한 열매들 중 많은 부분을 무참히 잃었습니다.

막막한 것은 장마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태풍 역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름이 가기 전 세찬 비가 몇 번은 더 내릴 테고, 뒤이어 태풍도 몇 개쯤 찾아올 테니 거센 바람 몇 번이 기필코 이 숲으로 찾아들 것입니다. 하여 나는 이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몇 번을 더 길이 끊기는 고초와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저 감나무와 층층나무 역시 맺어놓은 열매의 얼마만큼을 또 다시 잃어야 할 것입니다.

도모했던 것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야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기필코 겪어내야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나는 아직 숲에서 봄날부터 도모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붙들고 결실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존재들을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어딘가는 뜯기고 어딘가는 떨어지며 다른 어딘가는 부러져가면서 제 삶을 이루어가는 것이 오히려 眞實에 가깝다는 事實을 알게 되었습니다. 獨也靑靑 푸르다는 칭송을 달고 사는 소나무 역시 그렇습니다. 사는 동안 그는 겨울날 쏟아지는 폭설이나 거센 폭풍에 제 가지의 일부를 꺾이면서 제 모습을 이루어 나갑니다. 힘차게 뻗어 올리며 하늘로 오르는 미루나무나 은사시나무 역시 언제고 숲의 목수라 불리는 딱따구리 등살에 제 등줄기를 내주는 상처와 마주하게 됩니다. 볕 좋은 자리에 살아가는 어느 나무들은 칡덩굴에 휘감기고, 양분이 흘러 비옥하게 쌓이는 자리에 사는 어느 나무들은 토끼며 고라니며 노루 따위들에게 제 잎의 많은 부분을 뜯어 먹혀야 하는 상실과 마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傷處와 喪失이라는 現象들은 모든 삶의 實存을 貫通하는 必然의 하나입니다. 이 평범한 眞實을 나는 숲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人間의 不幸이 저 상실과 상처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모든 나무와 풀들이 제 몸의 일부가 부러지고 꺾이고 뜯기며 제 삶을 이루어가듯 人間의 삶도 역시 그러할 텐데, 인간에게는 상처와 상실 그것이 없기를 바라는 데에 우리 인간의 不幸의 原因이 있는 것이구나. 인간 고통의 근원이 꺾이거나 부러지면서 얻는 상처나 상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執着에서 연유하는 것이구나. 즉 내가 도모한 모든 것을 단 하나도 잃지 않고 이루려는 마음, 내가 발원한 가치의 어느 한 귀퉁이도 상처받거나 상실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執着心이 고통(苦痛)의 근원이구나.’

숲에게 여름은 가장 왕성한 성장의 계절입니다. 또한 상실과 상처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상실과 상처는 뒤얽혀 사는 모든 존재의 필연입니다. 그리고 그 상실과 상처가 주는 쓰라림이 실은 가장 위대한 스승의 모습입니다. 꺾이고 부러져 내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가 발아래에서 조금씩 썩어갑니다. 부러진 상처의 자리에서 어느 순간 새살이 돋고, 발 아래로 떨어진 상실의 부스러기가 마침내 흙 향기 가득한 퇴비로 바뀌는 날이 옵니다. 그러한 날 마침내 그 상실과 상처는 오히려 나를 더욱 돋워내는 귀한 거름이 됩니다. 그래서 부러지고 꺾이는 것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쓰라림과 허전함의 자리를 부둥켜안고 담담히 새살을 돋워야 합니다. 폭우와 강풍이 빚은 여름날의 낙과(落果)에게서 나는 그와같은 소중한 智慧를 배웠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