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으로 읽는 복음] 14. 일어나 걸어가라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짜타라(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다섯 채의
행각이 서 있었다. 이 행각에는 소경, 절름발이,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主님의 天使가 그 못에 내려 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먼저 연못에 들어 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다). 그들 중에는 38년 동안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에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
람이 없읍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 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가거라" 하시자 그는 곧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갔다.
[요한복음,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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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을 치유해 준다는 베짜타 연못가에서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어 주기를 기다리는 소경, 절름
발이, 중풍병자는 누구입니까? 아직까지 眞理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 자신이 아닐까요?
멀쩡한 제 눈과, 제 다리, 제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보고,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평범한 眞理는 놓아두고, 엉뚱하게 하늘나라의 천사가 내려와서 우리 인간 자신들을 구원해주기를 바
라고 있는 사람들이 병자가 아닐까요?
선가(禪家)에서 성미가 고약하기로 소문난 임제(臨濟)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道를 공부하는 벗들이여! 제방의 善知識들이 말하기를 닦을 道가 있고 깨칠 法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대들은 어떤 法을 깨칠 거이며 무슨 道를 닦는다고 말하는가? 그대들이 지금 쓰고 있는 道, 法에서
무슨 모자람이 있으며, 어떤 道를 닦고 무슨 法을 보완(補完)한다는 것인가? 못난 후학들이 道, 法을
잘 모르고 이들 여우와 도깨비들을 믿어서 그 여우와 도깨비들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까지 얽어매어 말하기를 ‘이치와 행이 서로 부합하고 삼업(三業)을 잘 보호하고
지켜야만 비로소 成佛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자들은 봄날에 내리는 가랑비처럼 많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길에서 道를 안다는 사람을 만나거든, 무엇보다 道에 대해서 묻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누구라도 道를 닦으면 道는 행하여지지 않고 도리어 수만 가지의 허망한 境界들이 다투
어 생겨나게 된다. 智慧의 칼을 뽑아들면, 이 세상에는 본래 아무것도 없다. 밝은 것이 나타나기 전에
어두운 것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또 옛사람이 말하기를, ‘平常時에 마음이 바로 도(道)다(
平常心是道)’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지금 여기 이 자리, 가고, 오고, 앉고, 눕
고 하는 이 作用에 무슨 모자라는 것이 있습니까? 살덩이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소경보다, 지금 멀쩡
하게 제 살덩어리 눈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도 그 활동이 眞理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
한 사람이 더욱 가련하고 불쌍한 환자입니다.
제 스스로는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病者일지라도 걸을 수 있는 能力은 전혀 아무 모자람이 없이 本來
부터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우쳐야만 합니다.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여러
病者의 모양을 따라 分別하느라 本來부터 이미 완전하고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眞理, 眞實生命, 하나님,
本性을 스스로 否定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하나님의 구원, 진리는 인간의 마음 바깥에서 찾아 구해야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하나님의 구원, 진리, 본성, 진실생명 그것이야말로 唯一한 自己自身, 참 생명,
진정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진짜 나 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本來부터 전혀 아무 모자람도
없이 완벽하게 주어진 無限한 能力, 성령(聖靈)입니다. 本來부터 이미 우리들 모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완벽하게 구원받았습니다. 본래부터 이미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전한 존재입니다.
(잠시 묵상)
본래의 나를 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릴 필요는 없습니다. 본래의 나에게로 다가가기 위해서 한
걸음도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본래의 나를 끌어안기 위해서 팔을 벌여 들어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이미 나입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그 때부터 끝을 알 수 없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무시무종으로 나는
오직 나입니다.
本來부터 이미 완벽한 나는 어디에도 어느 것에도 의지하고 있지 않지만 온갖 萬物이 이 나에게 의지해
있습니다. 二元性의 세상에서 客觀과 짝을 이루어 존재하는 主觀으로서의 ‘나’는 萬物 가운데 하나일 뿐
입니다. 진정한 나, 본래의 나, 영원한 생명(永生)으로서의 나는 어디에도 어느 것에도 의지함 없이 스스
로 어느 곳이나 어느 때나 존재합니다(I AM THAT I AM). 본래의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잠시 묵상)
특별한 어떤 기도, 어떤 묵상, 어떤 수행을 통해야만 좀더 나다운 내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진짜 나, 스스로 존재하는 나, 형상 없는 나,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나는 불가침의 신성
(神性), 靈性입니다. 본래의 나, 스스로 존재하는 나는 人間의 알량한 分別心 生覺 妄想 幻想 알음알이
(지식)으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성지(聖地)입니다. 문득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生覺을 잊는
순간 나를 깨닫습니다.
본래의 나, 스스로 존재하는 나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렇게 있습니다. (침묵)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의 고향, 자성청정심, 집, 본래의 나에게로 돌아가십시오.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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