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19. 오병이어(五餠二魚,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장백산-1 2016. 9. 29. 15:40

[선(禪)으로 읽는 복음] 19. 오병이어(五餠二魚,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그 뒤 예수께서는 갈릴리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무리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 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病者들을 고쳐 주신 기적을 보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등성이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잡고 앉으셨다. 유다인들의 명절인 과월절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예수께서는 

큰 군중이 자기에게 몰려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

올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물음은 단지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었고 예수께서는 하

실 일을 이미 마음 속에 작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제자 중의 한 명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읍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읍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앉혀라" 하고 분부하셨다. 마침 그 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은 남자만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感謝의 祈禱를 올리신 다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여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 

들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열 두 광주리

에 가득 찼다.  [요한복음, 6:1~13]


모양이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은 有限하지만, 모양이 없는 세계는 無限합니다. 그런데 모양이 있는 세상은 

모양이 없는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有限은 無限에서 나왔습니다. 有限과 無限은 둘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양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도 實際로는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有限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 세상 모든 事物들이 事實은 實際로 모양이 없는 無限한 것입니다.


유한이 무한이고, 모양 있음이 모양 없음이기에 그러므로 이 世上의 財貨(재화, 재물과 돈)은 필요의 입장

에서 보면 넉넉합니다. 기존에 있는 것만 나누어도 모든 사람이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貪慾心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의 財貨는 항상 不足하기만 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핍감이 탐욕을 일삼는 마음의 本質입니다.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相對的입니다. 나와 너, 크다 작다, 많다 적다, 길다 짧다, 삶과 죽음, 감 옴,

싫어함 좋아함, 시작 끝, 음 양, 부유함 가난함, 선 악, 높다 낮다, 건강 병들음, 향내음 악취,등의 相對的 

差別 分別을 피할 수가 없는 二分法的인 세상이 모양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모양이 없는 세상은 그

러한 二分法的인 相對的 分別이나 差別이 있을래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 너, 크다 작다, 많다와 적다, 

길다  짧다가 그것들의 本質은 다르지 않은 한 뿌리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양이 있는 것의 겉모양만 볼 수 있었을 뿐, 모양이 있는 것의 本質이 實際로는 모양이

없음이란 眞實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모양에 가려져서 모양 

없음의 無限함, 나누고 나누어도 결코 줄어듦이 없고 전혀 모자람이 없는 모양 없음의 無限의 眞實을 깨

닫지 못했습니다.


?무문관?에 다음과 같은 공안이 있습니다.


구지(俱胝) 스님은 누가 무엇을 물어 올 때마다 오직 손가락 하나만 들어 보였다. 나중에 구지 스님 처소

에 있던 한 동자에게 한 방문객이 “화상께서는 어떤 法을 설하시느냐?”라고 묻자, 동자도 역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구지가 이 이야기를 듣고 급기야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가 아파서 엉엉 울

며 달아나는데 구지가 다시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돌아다보자 이번에는 구지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에 동자는 문득 깨달았다. 구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서 대중에게 “내가 천룡의 한 손가락 禪을 얻어

일생을 쓰고도 다 쓰지 못했다.”라고 말하고는 입적(入寂)하였다.


구지 스님이 평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한 禪은 손가락이라는 모양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스

로 깨닫지 못하고 흉내만 내는 동자의 모양이 있는 손가락을 잘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지 스님이 평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한 禪(본성, 불성, 본래면목, 부처, 하나님, 본래의 나, 眞理, 法, 道, 心)은 모양이 

있는 손가락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은 기적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적은 쓰고 써도 줄어들 않는 진리, 본성,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그것을 흉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 기적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벗어나서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구지 스님의 부유함을 이해하려면, 구지 스님이 손가락을 세운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지 스님이 세운

손가락은 모양이 없는 진리, 달을 가리키는 수단 방편이었습니다, 모양이 있는 것, 유한한 것의 根源, 모

양이 없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

이신 기적의 실상을 이해하려면,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의 本質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잠시 묵상)


모양 없는 이것, 무한한 이것 그 자체가 스스로  모양 있는 것 유한한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어떤 

때는 마른 똥 막대기로, 어떤 때는 삼베 세 근으로, 어떤 때는 뜰 앞의 잣나무로, 어떤 때는 무문관으로,

어떤 때는 판치생모로, 어떤 때는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것으로, 어떤 때는 할로, 어떤 때는 몽둥이 찜질

로, 그리고 어떤 때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양이 없는 자신을 온갖 現象으로 현현(顯現)

하여 드러냅니다.


金剛經에 ,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허망(虛妄)하나니,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있음이 아님을 

알아차린다면, 그 즉시 如來(모양 없음의 本質)를 보리라’ 하였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에서 그 이름과 모양을 지워버리면 거기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진실로 무엇입니까?  (잠시 묵상)


부디 이름과 모양에 속지 마십시오.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