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30.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장백산-1 2016. 10. 16. 00:08

[선(禪)으로 읽는 복음] 30.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그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기를 청하자 제자들이 그 사람

들을 나무랐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화를 내시며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

어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

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마가복음, 10:13~16]

 

아무리 감정이 바짝 메마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天眞하게 웃는 어린아이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고민, 힘겨운 상황 속에 빠져있는 사람일지라도 청명한 방울

소리 같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만큼은 잠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은 천사와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천국을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린아이들이 가진 무엇이 그렇게 천국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잠시 묵상)


어쩌면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즉 천국을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른들도 어린 시절 분명히 누리고 

살았던 천진한 성품을 어느 사이엔가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잊어버렸습니다. 있는 그대로 하늘이 

부여한 우리 모두의 本來의 性稟, 本來의 面目, 본래의 나를 우리 어른들은 妄覺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부여한 우리 모두의 본래의 성품, 본래면목, 본래의 나 그것이 무엇일까요?  (잠시 묵상)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가만히 들여다 본 적이 있습니까? 어린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까? 인형 같은 까만 눈동자 속에 ‘나’가 들어 있던가요?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이 눈동자 속에 들어차 자리 잡고 있던가요? 오히려 그런 생각들의 부재, 생각의 흔적 없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生命力만이 어린아이의 눈 속에 가득차 있지 않던가요?


기회가 되면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그 눈망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되돌려 살펴보십시오. 우리 인간들은 모두 한때 天國을 살았습니다. 天國에서 왔기 때문에 당연히 

天國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작을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서 그 天國에 ‘나’라는 것이

등장을 했습니다. 原來부터 없었던 '나'라고 여기는 生覺의 活動이 육체적 성장과 더불어 천국에

생겨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인간들은 天國, 樂園에서 추방되어 相對的 對立과 반목, 分別로 

가득 찬 이 ‘현실세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누리던 天國은

어디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잠시 묵상)


예수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어린아이의 순진한 마음, 순수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 

낙원입니다. 하느님 나라, 천국, 낙원, 순수한 의식, 순진한 마음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本來 性稟(本性), 

本來 面目, 無面目,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 본래의 나 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참된 정체성, 

참나(眞我), 진짜 나 입니다. 아무 내용이 없는 의식, 텅~비었지만 가득 차 있는 생명의 힘, 영원한 현재,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순수한 존재 자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잃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착각했을 뿐입니다. 다만 그것을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나’와 

‘내 것’, ‘세계’가 전부일 뿐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은 하나님 나라, 천국, 낙원이 아닙니다. 

천국, 낙원, 하나님 나라는 알음알이(識), 분별심, 분별의식, 지식, 견해 지견 이해로 알 수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천국은 ‘나’의 내면 바깥에 있는 모양이 있는 사물이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천국, 하나님 나라, 낙원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본래 성품, 본래 면목, 참나입니다. 우주

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은 천국, 참나, 본래면목, 본성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스스로 멈추는 순간, 생각이 저절로 쉬어지는 순간, 본래 있던 천국, 본성, 본래면목, 진짜 나, 

이것,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의 진실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드러납니다. 계시처럼 한 

순간 천국, 하나님 나라, 낙원, 본성, 진짜 나, 참나, 본래면목을 알아보게 됩니다.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常住不滅로 不生不滅로 있었습니다. 무시무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늘 변함

없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렇게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자기 안에서, 자기

를 잃어버리고, 자기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곳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여기 이 순간에 있으면서 다른 때를 갈망하며 

살았습니다.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잠시 묵상)


진실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마음, 순수한 마음 가운데는 ‘순진’과 ‘순수’ 같은 언어라는 티끌마저도 없

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천진한 마음이 어른들의 눈에는 마치 무지(無知)처럼 비춰지지만 순수한 마음은

결코 무지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의 천진한 마음은 앎의 내용은 없지만 알 수 있는 능력인 본래의 앎

(根本知), 本來知, 본성, 본래면목, 천국, 낙원, 하나님 나라, 본래의 나, 진짜 나 마저 없는 것은 아닙니

다. 천진한 마음, 순수한 마음은 무엇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본래의 앎(本來知) 그 자체일 뿐입니다.


이 우주,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뿐인 이 본래의 앎을 다시 알 수 있는 자가 따로 있을 수가 결코 없습니

다. 그러므로 둘이 아니고, 하나 또한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 本來의 앎을 절대자,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은 하지만 절대자, 하나님이라는 이름 그 역시 相對的인 分別心의 산물일 뿐입니다. 本來知는

결코 생각을 통해 이해되고 확인되고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래지에 대한 마지막 의문이 

사라지는 순간 이해와 확인과 증명의 필요성 또한 사라질 뿐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듯이 빛도 어둠이 없이는 빛을 발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침묵)


- 몽지-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