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깨달음으로 피어난 여성들05> 빼어난 외모에 자만했던 케마왕비

장백산-1 2016. 11. 2. 15:54

<깨달음으로 피어난 여성들05>  빼어난 외모에 자만했던 케마왕비


케마 왕비는 붓다로부터 지혜제일이라는 칭송을 들은 비구니입니다. 그녀는 출가하기 전 마가다국 빔비

사라 왕의 왕비였습니다. 왕비의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고, 몸매 또한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자기 미모에 

대단한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자존심도 강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림정사를 지어 붓다에게 기증한 터였습니다. 왕은 그녀의 미모가 워

낙 뛰어나서 그만한 자존심도 가질 만하다고 내심 이해하고 있었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비에게 죽림정사의 붓다를 만나보라고 자꾸 권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왕의 권유를 듣지 않았습니다.


왕비는 붓다는 미모를 경멸하고 무시한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들로부터 듣어 알고 있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했습니다. 가수를 불러 왕비가 들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죽림정사의 평화롭고 기

쁨에 넘치는 분위기를 노래하라고 일렀습니다. 왕비가 마침내 그 노래를 듣고는 죽림정사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어느 날 왕비는 아무도 몰래 죽림정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붓다께서 설법하고 계셨습니다. 설법하는 

붓다의 주위로 왕비보다 훨씬 아름답고 젊은 시녀들이 종려나무 잎을 들고 부채질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最正覺 (無上正等正覺, 더 이상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붓다께서 아름다운 용모에 대해 경멸하신다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왔다. 그런데 아름다운 처녀들이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구나. 그런데 아, 저 

처녀들에 미모에 비한다면 나의 미모는 보잘 것이 없구나.’


미모에 관심이 지극했던 터라 설법은 안중에도 없고 왕비의 마음은 오직 처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때 붓다께서는 자신이 幻像으로 지어낸 젊은 미모의 여인들에 대해 왕비가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잇는 것을 알고는 미모의 처녀들의 환상의 모습을 차츰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미모의 아가씨 모습에

서 성숙한 여인으로 바꾸다가 마지막에는 추한 늙은이로 바꾸었습니다. 결국에는 아름다움은 간데없고 뼈

를 둘러싸고 있는 가죽 주머니 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왕비는 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

고는 그 즉시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도 결국은 늙어 죽는구나. 참으로 물질로 구성

된 이 몸은 영원한 것이 못되는 구나.’라고.


왕비는 자신의 몸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인간의 외모에만 사로잡혀 

있었고, 인간의 외모가 영원할 것이라는 幻想에 젖어있었습니다. 자신의 외모도 곧 늙어 추해질 것이고 육

체 또한 사그라질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게 되었습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비여, 그대는 몸의 아름다운 모습을 참된 것, 영원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몸은 영원한 것, 참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는가? 왕비여, 그대는 마땅히 사대오온(

四大五蘊), 즉 地水火風과 色受想行識( 육신, 느낌 감정, 생각 망상 환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의식 분별심 알음알이(識)으로 구성된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구적인 이 몸을 질병과 더러움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이 그런 육신에 집착하여 육신을 구하고자 갈망을 

일으킨다.”


붓다의 설법이 끝나자 케마 왕비는 곧바로 수다원果의 깨달음를 성취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왕비는 

출가(出家)를 결심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왕비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결국 출가를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왕비는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果의 깨달음를 성취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법구경 게송347-


악마(분별심, 망상)이 케마 스님을 유혹하였다. “당신은 젊고 아름다우며, 나 역시 젊고 한창때입니다. 자, 

케마 스님! 우리 함께 다섯 가지 악기나 연주하며 즐깁시다.” 케마 비구니가 답했다. “병에 걸려 쉽게 이지

러지며 악취를 풍기는 육신에 그동안 나의 마음은 시달려 왔으며, 이제 이 육신에 혐오를 느낍니다. 애욕에 

대한 헛된 집착은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쾌락의 즐거움은 모두 무너지고, 무명의 암흑덩이는 산산이 부

서졌습니다.”  -장로니의 고백139~140-


육체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은 모든 고통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삶과 죽음이 있다는 허망한

생각 환상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실체가 없는 사대오온에 대한 집착심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에 대한 집착심은 무병장수에 대한 집착심,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집착심, 빼어난 

몸매에 대한 집착심 등으로 나타납니다. 現代 사람들은 더욱 육체에 사로잡혀서 건강 분야, 성형이나 미용, 

의류산업 분야가 소비생활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만큼 인간들은 육체, 외모, 보여지는 모습

에 집착하여 허망한 그것들에게 헛되이 사로잡혀 살고있다는 말입니다.


분별 시비 비교 판단 해석으로 인한 고통의 시작은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여기는 허망한 생각에서 부터이

고,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나의 육체로부터 입니다. 몸(지수화풍)과 마음(수상행식)으로 이루어진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착각, 환상에 고착되면서 삶은 고통의 연속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육체는 불안정하고, 無常한 끊임없이 파동하는 에너지덩어리입니다. 이 불안정하고 무상한 끊임없이 파동

하는 에너지덩어리인 사람의 몸은 날씨의 변화에 따라 늘 보살펴 주어야 하고,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병균

으로부터 각별히 신경써 줘야하고, 늘 청결을 유지해 주어야 하고, 음식을 계속 먹어줘야 건강하게 유지되

는 존재입니다. 몸에 병이 나면 인간의 온 신경이 몸에 집중되서 다른 것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

람들은 알게 모르게 육체에 많은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들이며, 이 육신의 상태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이 몸에 의해서 구속을 당하며 살아 갑니다.


이 육신에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해도 이 몸은 추하게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존재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이 세상으로 생겨난 모든 것들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한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

니다. 케마 왕비도 자신의 빼어난 미모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허망한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붓다가 케마를 위해 만든 젊은 미모의 幻像의 여인들이 늙어 추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자신의 

착각을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외모도 머지않아 저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게 된 것

입니다. 그러면서 육체에 대한 집착과 욕망, 영원할 것이라는 幻想을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초기불교에서 붓다가 깨달음으로 이끈 方便은 人間의 肉體의 虛妄함, 현상의 無常함을 관(觀)하는 것에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많은 수행자들이 육체의 허망함을 관하는 백골관이나, 탐진치를 

떠나는데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주 重要한 事實은 참된 깨달음은 現象의 無常함만을, 즉 이 현

실세계가 끊임없변화하면서 흘는 것이라는 사실을 관찰(觀察)하여 물질적 정신적인 현상인 이 현실세계

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놓아버리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참된 깨달음은 물질적인 이 육체(사대)와 정신

적인 수상행식은 허망하지만 허망한 육체와 정신의 本性, 本質, 根源은 무시무종으로 여원불변, 상주불멸, 

불생불멸의 영원한 진실생명으로(영생) 恒常하다는 自覺입니다. 이 自覺이 진정한 구원, 진정한 부활, 진

정한 영생, 진정한 천국, 극락입니다. 육체가 때론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건강

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이 바로 마음 하나, 한뿌리, 한바탕, 한본질, 한근원뿐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 한바탕, 본성은 육체에 갇혀있는 것도 아니지만 육체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본성, 한마음, 한

뿌리, 한근원, 한 본질은 우주에 충만해서 아니계신 곳이 없고 영겁에 항상해서 아니계신 때가 없는 우주

대광명, 영원한 진실생명(영생)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참된 육체, 불이의 육체가 무엇인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파조타 화상이 머물던 숭악산 중턱에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매우 영험하였다. 사당 속에는 한 개의 부엌 

아궁이가 있었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려는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데서 많이 찾아왔다. 그들은 제물로 

살아 있는 동물을 통째로 솥에 넣어 끓이는 일이 잦았다.


파조타 스님이 하루는 시자들을 이끌고 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 주장자로 아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본래 진흙과 기와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영험은 어디에서 오고 성스러움은 어디에서 일어나

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아궁이를 몇 차례 두드리면서 말했다. “부서져라. 무너져라.” 그러자 그 아궁

이가 곧 부서지고 잠깐 사이에 푸른 옷에 높은 모자를 쓴 모습 하나가 나타나 스님에게 절을 하고는 말

했다. “저는 본래 이 사당의 조왕신(부억을 지키는 神)으로서 오래도록 제가 지은 業에 대한 果報를 받아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스님이 무생법(無生法,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해탈

(자유롭게)하게 되었습니다.이렇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스님이 말했다. “그것은 본래부터 이미 너에게 있는 완전한 本性이지 내가 억지로 말한 것이 아니다.”

조왕신은 거듭 절을 하고는 없어졌다.


그 상황을 지켜본 시자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곁에서 스님을 모셨는데 아직 깨우쳐 주시는 은혜

를 입지 못했는데, 조왕신은 무슨 說法을 들었기에 바로 해탈(解脫, 모든 분별심에서 벗어나 마음이 자유로

와 짐) 할 수 있었습니까?”


스님이 말했다. “나에게 따로 무슨 특별한 道理는 없다. 다만 조왕신에게 말하길 ‘너는 진흙과 기와가 합하

여 이루어진 것인데, 신령함은 어디에서 오고 성스러움은 어디에서 일어나느냐?’라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절하지 않느냐?”


시자들이 절을 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그들의 머리를 주장자로 두드리며 말했다. “부서져라. 무너져라.”

시자들이 일시에 크게 깨달았다.  -선문염송 고칙 153-


내용을 보면 현실세계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할 신비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

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眞理를 가리키는 方便의 말

들은 모두 보는 이로 하여금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지팡이 역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

의 육체도 진흙과 기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아궁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붓다도 人間이 사대

오온(四大五蘊)이 합쳐져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四大란 땅, 물, 불, 바람이고, 五蘊이란 물질(色, 모양), 

느낌감정, 생각 망상 잡념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도 의지, 분별의식 분별심 알음알이(識)입니다. 

아궁이가 因과 緣의 조합이듯이 인간의 몸과 정신 또한 인과 연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부엌의 

아궁이와 다를 바가 조금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궁이가 영험을 드러내듯이 우리 인간들

도 시시때때로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듣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는 등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신령스럽고 성스럽고 영험이 있는 우리 인간들입니다.


파조타의 질문에 조왕신이 나타나 말합니다. 그동안 자신은 부엌의 아궁이를 자신으로 알고 그 생각의 업

에 눌려 살았는데, 이제야 화상의 無生法, 즉 생과 사가 따로 없는 모양없는 이 성품, 즉 본성, 본바탕을 

가리켜 보이시니 해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파조타 화상은 ‘이것은 그대의 본성이지 내가 말한 것이 아

니다’ 라고 합니다.


파조타 화상이 파조타 화상이 아니요, 그의 말이 그의 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

게 여러분들이 그 본성, 텅~빈 본바탕을 화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各者의 本性이 신비스런 이

야기도 드러내고 있고, 붓다의 말씀과 케마 왕비의 깨침도 이렇게 화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 

모두의 본성이 이 영험을 지금 여기서 이렇게 화려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일어난 허망한 분별

과 생각과 이미지에 속아 저 밖에 본성의 영험이 있다는 허망하고 헛된 생각, 分別 妄想에 빠집니다. 이 분

별 망상을 부수라는 말입니다. 이 분별 망상이 허망한 실체가 없는 분별 망상, 즉 환상, 환영일 뿐이라는 사

실을 깨달으라고 부서져라, 무너져라 말하면서 시자들의 머리통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육체나 정신은 허망하지만 이 육체나 정신의 本性, 텅~빈 본바탕, 한 뿌리, 한 근원, 한 본질은 허망한 것도

아니고 허망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 마음이 바로 이 본성으로 인해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을 비롯하여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경험하는 온갖 것, 과거의 모든 일, 미

래의 모든 일이 바로 지금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한 마음일 뿐입니다. 모든 깨달음이란 바로 이 한 개의 

깨달음뿐입니다. 그러니 붓다의 깨달음이 케마 왕비의 깨달음이고, 케마 왕비의 깨달음이 파조타 스님의 

깨달음이고, 파조타의 깨달음이 조왕신과 시자들의 깨달음이며,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나의 깨달음이며,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나 그대로 그저 나일뿐입니다.


- 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