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할 땐 거울을 들여다 보라 / 숭산스님 | 영원한 나를 찾아서
해솔||2016.11.21.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Ev0h/6429
우리는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진리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주만물은 空하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이
본래부터 이미 완벽한 길, 진리의 길이다. 이 사실을 知的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수행을 통한 어떤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실제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절대이고 경계가 없으며, 나의 모든 생각 말 행동이 순간순간 이 세상 중생을 향한 큰사랑과 자비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사실, ‘나’라는 것은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다른 중생을 위한다는 말도 틀린 말이다.
‘나’와 ‘남’의 경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길, 진리의 길 그 길에는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고 기쁨도 없고 고통도 없다.
그 길에는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되면 순간 순간의 할 일이 명확해진다. 순간순간의
인간의 생각 말 행동 모든 행위는 진리이며 완벽하게 다른 중생의 고통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도와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도와 줄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며, 본래부터 이미 완벽한 길이며, 진리의 길이다. 이런 자비로운 마음은
어떤 관념, 개념이나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길 그 자체이며, 이것이 보살의 길이다.
‘나’라는 것은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중생과 나는 둘이 아니다.
중생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며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나는 단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대자대비심’, 위대한 사랑과 자비를 가진 마음, 즉 절대의 길이다.
이제 대승(大乘)의 가르침을 정리해 보자.
먼저 인간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똑같이 우주의 실체이며, 기본적으로 空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다음 이 우주만물의 수많은 이름과 모양이 空하므로 ‘나’라는 것이 본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中道이며 본래부터 이미 완벽한 길, 진리의 길, 바른 길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지금 여기서부터는 어떤 법칙, 어떤 이름, 어떤 모양이든지 이 세상 모든 것이 모두
眞理이기에 인간들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무애(無碍)의 마음을 얻으면 인간들의 모든
생각 말 행동은 있는 그대로 진리이며 부처가 하는 행위이다. 순간 순간의 모든 행위가 이 세상 모든
존재와 비존재와 함께 하고 있는 우주적 본질에 닿아 있다. 더 이상 ‘너’와 분리된 ‘나’는 없다.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인간들의 생각 말 행동은 그 자체가 대자대비다.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대승불교의 주요 가르침 중 이 세상 모든 것이 空하다는 것과 이 세상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眞理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이 세상 모든 것이 空한데 그게 眞理란 말입니까?”
아주 좋은 질문이다. 답은 쉽다. 거울을 봐라. 거울 속엔 아무 것도 없다. 거울은 완벽하게 空하다.
그러나 거울 앞에 붉은 종이를 갖다대면 붉은 종이가 거울 속에 나타나고, 하얀 종이를 갖다대면 하얀
종이가 그대로 나타난다. 산을 갖다대면 산이 나타난다. 텅~비어 空한 거울은 지금 여기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춰 줄 뿐이다. 거울 앞에 갖다 댄 붉은 종이를 치우면 거울에는 더 이상 붉은
종이가 없다. 오로지 무엇을 거울에 갖다 비출 때만 거울에 형상, 모양이 나타난다. 텅~빈 맑은 거울은
언제나 완벽히 空해서 어떤 것도 執着을 하지 않는다. 아니 집착을 할래야 집착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은 어떤 것도 아무런 장애도 없이 집착도 없이 분별도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줄 뿐이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은 거울 처럼 텅~비어 공한 이 우주라는 텅~비어 공한 거울 앞에서 있는
그대로 왔다 갔다 하며 비춘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말고 아무 것도 덧붙이지도, 빼지도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춰주는 텅~비어 空한 거울이지만, 거울에 비친 이 세상 모든 모양 역시 ‘공(空)’
하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眞理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텅~비어 공한 거울처럼 그렇지 못하다. 인간의 마음 거울에 붉은 것을 갖다대면
인간의 마음 거울도 역시 붉은 대로 비춰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붉은 것을 치운 뒤 하얀 것을 갖다대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거울은 여전히 ‘붉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 거울은 일반 거울과는 달리
생각을 하기 때문에 ‘붉은 것보다는 하얀 것이 낫지 않을까?’ 혹은 ‘다음에 다시 붉은 것이 나타날까?’
혹은 ‘지금 앞에 있는 하얀 것은 좋지 않아. 붉은 것이 더 좋아. 아니야, 하얀 것이 더 좋아, 잘 모르겠다’
고 비교하고 분별하고 생각을 굴린다.
인간의 마음 거울 앞에 하얀 것이 있지만 인간의 마음 거울은 언제나 그것을 ‘제대로 그대로’ 비추지 않
고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기를 일삼는다. 하얀 것 말고 다른 것에 執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거울은 이처럼 언제나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비춰주지 않는다.
아주 강한 욕심과 집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자비롭게 행동하는 대신 이 세상
의 좋고 나쁨,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너와 나, 生과 死등의 이분법적인 분별에 집착한다.
모든 이분법적인 분별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이라는 거울이 스스로 만든 환상이다.
우리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佛)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空
해서 결국 이 세상 모든 것이 空으로 똑같다는 사실을 터득하면 인간들이 사는 삶은 모든 중생을 위해서
사는 삶이며, 그런 삶이 바로 부처로 사는 삶이다. 이런 부처의 삶에서 자비심은 저절로 우러나온다.
보살의 삶이라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이다. 우주만물이 ‘공(空)’하여 결국 모두가 空으로 하나라는 진실을 터득하면 인간들의 삶은
모든 중생을 위한 삶인 것이다. 이런 삶이 바로 부처의 삶이다. 이런 삶에서는 자비심이 저절로 나온다.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면 욕심이 생기고 이 세상 모든 것과 내가 분리되는 분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사라지면 더 이상 분리감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텅~비어 空한 거울에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망상 번뇌 생각 집착이라는
장애가 없으면 자비로운 대보살로서의 자비로운 행위, 즉, 자비로운 생각 말 행동은 저절로 나타난다.
반야심경에 '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 말하듯이 오직 순간 순간 중생을 돕는 일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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