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손 흔들고.. '세리머니형 인간' 박근혜 심리학
윤성민 기자,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입력 2017.03.13 17:26
“이렇게 떠나면서 최소한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게 도리 아닌지.”
12일 오후 7시45분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도착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던 시민들의 반응은 이랬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당하고 청와대에서 쫓겨난 신세였는데도, 지지자들 앞에선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기 때문이다.
측근들과 인사를 마치고 사저로 들어간 박 전 대통령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저 밖과 안에서 보인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국민일보는 4년여 국민들의 지도자였던 ‘인간 박근혜’를 이해하기위해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감정과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을 ‘세리모니형 인간’으로 정의 내렸고, 한 사회학자는 “상황 이해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신과 상황을 분리시키는 해리(解離) 수준”
임기 동안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일반적인 비판은 “공감 능력 부족”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자식 잃은 유가족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해 10월29일 국회 본청 앞에선 인상적인 장면이 벌어진다. 세월호 유가족이 “대통령님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울부짖는데도 박 전 대통령은 눈길도 주지 않고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청으로 들어갔다.
정혜신 정신건강 전문의는 책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서 “어릴 적 양친을 모두 끔찍한 사고로 잃고, 18년간 홀로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치료하지 못한 트라우마로 인해 공감능력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지난해 11월 박 전 대통령이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박 전 대통령이 12일 보인 미소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해야한다고 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갑작스런 (양친) 상실의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실제 일어난 일을 분리시켜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새롭게 인식해버리는 해리 수준”이라며 “문제와 상황을 단순화해 다 남 탓이고 본인은 억울하다는 식으로 상황을 인식해 (지지자들 앞에서) 미소를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선완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웃는 태도는 반동형성, 즉 감정을 반대로 표현하는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그의 성격 특성은 자기애적(Narcissistic) 특징이 커 논리적 일관성보다는 자신의 부풀려진 자존심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실제 일어난 사실을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왜곡해 받아들인다는 해석이다. 그는 지난 1월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최순실 게이트) 진행 과정을 추적해보면 뭔가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실제 감정과 표정을 분리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섭 안산연세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오래 해왔는데, 그 자리는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선 안 되는 자리였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정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매우 서툴러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이어 “이를 정신과학에서는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가 일상화돼 있다는 점에서 ‘의전형 인간’ 또는 ‘세리모니형 인간’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정선용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정신과 교수는 “내가 항상 옳은데, 내가 틀렸다고 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인다”며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웃는 표정을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지자들에게 신호 준 것”
박 전 대통령의 미소가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웃음은 음모에 의해서 탄핵 당했다며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밝게 웃었다는 건 정치심리학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골수 지지자를 비롯해 친박 인사들이 나온 것에 대해서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지지자들에게 힘을 내라고 사인을 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 입장에서는 만약 거기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거나 하면 헌재 판결에 승복하는 격”이라며 “그런 점에서 밝은 표정은 불복을 표시하는 표현이며 앞으로 검찰 조사가 있을 텐데 사람들을 계속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지자들에게 ‘앞날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원장도 “정치인은 지지자의 응원과 격려를 먹고 산다”며 “박 전 대통령은 이것을 스스로 의식을 했든, 안 했든 관계없이 지지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윤성민 기자,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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