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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는 민족사의 가장 아름다운 ‘참아들’
▶평해 오곡리 산1번지에 있는 순흥안씨 제단인 비산단(飛山壇). 이곳에는 입향조의 묘소가 있고 입향조 윗대 3대를 모시기 위한 비각 3개를 나란히 세웠다. |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그리고 안중근(安重根) 의사...민족사의 가장 참담한 시기에 자신의 몸 살라 어둠을 밝히고 구원(久遠)의 별이 되어 역사의 천공(天空)에 오른 거룩한 두 이름.
이들은 순흥 안씨 가문의 정신이자, 가장 아름다운 한민족사의 「참아들」이다.
이들 두 민족정신의 지도자는 어질고(仁) 슬기롭고(智) 굳센(勇) 한겨레의 얼이 고난의 마지막 수렁에서 허덕일 때, 떨쳐 일어나 등불을 밝혀 이 땅의 백성들에게 나아갈 길을 정해 주었으니...
도산은 일제하에서 참되자(務實) 일하자(力行) 미쁘자(忠義) 날쌔자(勇敢)의 4대 정신운동인 큰선비운동(興士團)을 전개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두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5억 아시아인의 이름으로 동양평화의 파괴자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했다.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 독립국의 의지가 있는 국민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열린다』 『나라가 없을 때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 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
도산의 독립의지는 이처럼 역력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59년 일생동안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고, 일제 부역자들과 싸우다 결국 침략자의 형벌에 순국하고 마나니...
후세는 이러한 도산을 인도 독립운동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에 비유하는 것이다.
「장부는 비록 죽을 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하더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丈夫雖死必如鐵 義士臨危機似雲」라는 유시를 남기며 의연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민족의 투철한 자존심을 지켜준 안중근 의사, 그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민족사의 가장 멋진 남아의 최후였다.
순흥(順興) 안씨의 시조는 고려 때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냈던 안자미(安子美).
그는 당시 흥령興寧(현재의 풍기 순흥) 지방에 세거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순흥으로 삼았다.
시조는 영유(永儒) 영인(永麟) 영화(永和) 세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3형제가 크게 번성하여 3대 분파를 이루고 있다.
아무리 도산과 안중근 의사라 하더라도 순흥안씨의 문중에서 이름 바랠 수 없는 인물들이 또 있으니, 우리나라 주자학의 태두 안향(安珦)선생과,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을 지어 국문학사에 우뚝 빛나는 안축(安軸)이 있다.
특히 안향은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지냈는데, 문교의 진흥을 위해 육영재단인 담학전(膽學錢)을 설치 이 땅에 신유학인 주자학을 전파했고, 사후에 공자를 모시는 문묘(文廟)에 배향되는 학문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순흥안씨는 조선조 들어 중종~명종 대에 정승 판서들을 배출하며 가문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리고 한말 이후 또 한번 안씨가문은 애국충정의 문중정신을 되살리어 많은 애국적 인물들을 배출했다.
3.1운동 후 독립군사령부를 창설했던 안무(安武), 미군정 당시 민정장관을 지냈던 독립운동가 안재홍(安在鴻),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음악가 안익태(安益泰), 한말의 대표적인 화가 안중식(安中植)이 있다.
그리고 한 말 안씨문중의 이름을 또 한번 높이 들어 올린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거상(巨商)이었던 애국지사 안희제(安熙濟) 선생이다.
그는 부산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상해 임정에 독립운동자금을 공급했다. 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천여 의병을 진두지휘 홍주산성에서 항일전을 치뤘던 의병장 안병찬(安炳瓚) 등이 조국독립의 제단에 일생을 바쳤다.
순흥안씨의 울진 입향은 지금으로부터 약 오백년 전인 1548년(명종 3년)이다.
입향조 안오상(安五常)은 시조의 14세 손이며, 문정공(文貞公) 근재(謹齊)선생 안축의 후손으로 황해도관찰사겸수군병마절도사(黃海道 觀察使兼水軍兵馬節度使) 재임 중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돼 평해군수에 좌천되자 관직을 버리고 기성면 황보리에 안착하였다.
안병락(78세) 종회 고문과 안찬원(71세) 종회장에 따르면, 후손들과 지방유림들은 가선대부(嘉善大夫)였던 입향조의 덕망과 학식을 추모하여 계를 조직하고 기성면 척산리에 경모재(景慕齋)를 건립하여 전해오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7일 황보리 입향조 묘소에서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들어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순흥안씨는 전국에 약 20만 가구에 47만명이 살고 있어 본관별 성씨순위 15위이며, 우리나라 안씨(安氏) 전체인구 수 약 65만명의 72%를 차지하는 안씨 대종(大種)이다.
울진에는 인구 수 1천명이 넘어가는 15개 성씨 중 15번 째인 손씨(1024명) 다음의 14번 째를 차지하는 중규모급 성씨로서, 408가구에 약 1012명의 꽤 많은 족속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국적인 유명 집성촌은 조선 중종 때 유학자 안관(安灌)이 개척한 경남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이며, 울진에는 기성면 척산리 자산마을이 집성촌으로 70년 대 최고 번성기에는 약 80여 호 모두가 순흥안씨였으나, 지금은 약 40여 호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한다.
그 외에도 기성 황보리와 정명리, 구산리 그리고 원남 근남 온정 평해를 비롯 평택 예천 청송 서울 대구 황간 등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고.
울진의 순흥안씨 가문에서의 인물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 장성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국회의원을 지내고, 재경울진군민회장도 역임하였던 안교덕(82세)씨로서 현재 순흥안씨 제3파(第三派) 대종회장으로 재임중이다.
그리고 기성 자산마을 출향인 자손들이 지난 01년도 국가 제 42회 사법고시에서 동시에 4명이나 합격하여 가문의 영예와 자긍심을 한 껏 높여 주었다.
자산마을 출신으로 울진읍에 나와 주류도매업을 하고 있는 안병찬(安柄贊·66세)씨는 종문의 성질은 평소 온순하고 결백하지만, 불의와 우국의 상황이 발생할 때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함양되어 있어, 충의와 지사적인 인물들이 많이 태어 난다고...
그리고 소윤공(少尹公) 평해파(平海派) 종손인 안호열(安虎烈, 70세) 옹은 후손들이 당당하게 가문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으며, 또한 숭조목조(崇祖睦祖) 정신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종문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전병식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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