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생 동시멸인 존재인 나와 이 세상
연기법 - 중아함경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보고, 法을 보는 자는 연기(緣起)를 본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此滅故彼滅)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석가모니 세존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연기법은 석가모니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무시무종으로 법계(法界)에 항상 머물러 있는 법칙이다. 나 석가모니 여래는 이 연기법을 스스로 깨닫고 정등각(正等覺)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해 연기법을 연설하고 드러내 보인다. 연기법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고, 무명(無明)을 인연(因緣)하여 행(行)이 있고 나아가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면 行이 滅하고 나아가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滅하는 것이다” [중아함경]
✔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은 서로서로 상의상관적(相依相關的)으로 연결(連結)되어 있다. 상호의존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수많은 인(因)과 연(緣)이 서로 화합했을 때 과보(果報/結果)를 맺는다. 저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 하는 인연가합(因緣假合)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몽환포영(夢幻泡影) 같은 존재일 뿐이다. 인연가합된 존재 그것은 실체가 없다. 마치 눈병이 난 사람에게 허공 속에 헛것이 보이는 것처럼, 원인이 있을 때만 그에 합당하는 결과가 있을 뿐이다. 원인이 사라지면 그에 따라 결과도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은 인연 따라 잠시 잠깐 가짜로 모인 헛된 것들인 이 세상 모든 것을 진짜로 있다고 착각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진짜로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갖고싶어 그 가짜들에 집착하고 집착하지만 원래 가질 수 없는 것들이기에 가질 수 없음에도 가질 수 없을 때 괴로워 한다. ‘나’라고 하는 존재도 수많은 인연이 서로 화합하여 거짓으로 잠시 잠깐 만들어진 인연생 인연멸하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허망한 존재일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전부 인연생 인연멸 하는 가짜이다.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연기의 진실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도 진짜로 있다고 여기고, ‘너’도 ‘이 세상’도 진짜로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아상(我相)이 생기고, 소유욕이 생기고, 욕심과 집착심이 생긴다.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갖고자 원하지만 그것들을 가질 수 없을 때 괴로움도 생기고, 내가 있다고 여기니까 내가 늙고 병들고 죽어갈 때 괴로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자연스러운 비실체적인 연기의 실상에 어둡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실, 이것과 저것이 서러서로 인연해서 생겨나고(因緣生) 서로서로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사실은, 이 세상 모든 것은 동시적으로 생겨나는 현상이며 한 몸(一體)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있어야지만 저것이 있을 수 있고 저것이 있어야지만 이것이 있을 수 있으니, 이것과 저것 둘은 서로서로 동시생(同時生) 동시멸(同時滅), 즉 동시에 생겨나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세상 이 우주 전체로서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나와 너 사이에는 어떤 분리 분별 차별 차등이 없다. 내가 너보다 더 잘날 필요도 없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와 너, 나와 이 세상은 인연생 인연멸, 동시생 동시멸 하는 연기적 존재, 상호의존적인 존재, 상의상관적인 존재로서 동체적인 하나임(一體)의 존재다.
이러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연기적인 존재임을 깨달음은 곧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나임에서 오는 자비심을 불러일으킨다. 너를 사랑할 때 나도 사랑받는 것이고, 너를 미워할 때 나도 미움 받는 것이다. 너와 내가 서로서로 분리 분별 차별 차등되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둘이 아닌 하나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따로 있고, 너도 따로 있으며, 세상도 따로 있다고 착각한다. 이러한 착각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허망한 분별심(分別心)이며 어리석음(癡치), 곧 무명(無明)이다. 이런 어리석음, 무명으로 인해 허망하고 헛되게 너와 경쟁하고, 세상에서 나를 드러내 보이려고 애를 쓰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애를 쓰면서 힘들고 괴로운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허망한 분별심, 무명, 어리석음을 인연으로 하여 모든 괴로움이 발생하니, 분별심, 무명, 어리석음이 소멸되면 곧바로 괴로움이라는 환상(幻想, 허망한 생각) 또한 소멸되는 것이다.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질적 정신적인 현상일 뿐인 이 세상 모든 것은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幻影), 이슬, 번개 같은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멀쩡히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다. 연기된 모든 것은 마치 꿈처럼 잠시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소멸되는 것일 뿐, 고정불변하는 실체 진짜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온갖 모양, 들려오는 온갖 소리, 풍겨오는 온갖 냄새, 혀로 느끼는 온갖 맛, 온갖 감촉 등 가짜에 속지 말라. 인연 따라 생겨난 모든 것들은 전부가 다 가짜다. 그러니 그런 가짜에 목매달려 집착할 필요나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집착과 욕망, 분리분별에서 놓여날 때 어리석음, 분별심, 무명이 타파되고, 이 세상은 아무 일이 없다. 모든 일이 다 일어나면서도 동시에 일어난 모든 일이 아무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인연생 인연멸, 동시생 동시멸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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