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 유신체제 종언의 길
입력 2017.04.19. 10:06
우병우씨를 제외하고 관련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구속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 대한 해결은 실마리를 잡기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되었던, 혹은 그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방치되었던 ‘생태 농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별로 없다. 심지어 대선후보들조차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4대강은 대형 보로 막혀 강바닥이 썩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펄스 방류와 같은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국책 연구기관이 숫자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세먼지 대책은 비과학적이고 무책임했다. 우선 배출량 통계 집계에서부터 사각지대가 많고 근거자료들이 부실하다. 백령도의 미세먼지 농도 수치를 2년간 인터넷에 엉터리로 기재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바람이 불지 않고 대기가 안정되면 대기오염이 더 심해진다.
예를 들어 1952년 겨울, 런던에서 사상 최악의 스모그로 인해 수천명이 사망했을 때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기오염이 심한 날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영향이 80%라고 주장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바람이 덜 불거나 정체되어 대기오염이 심한 경우에 어떻게 외국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가? 게다가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인 석탄화력발전소를 2029년까지 20기나 더 짓겠다고 함으로써 미세먼지를 오히려 더 유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장려한다면서 무턱대고 규제를 완화하는 바람에 생태계가 파괴될 위험에도 처했다. 풍력발전 인·허가 완화조치로 ‘생태자연도 2급지’에서만 가능하던 풍력발전소 건설을 ‘1급지’까지 풀고, 산지전용 허가도 3만㎡ 이내로 제한하던 것을 10만㎡ 이내로 넓히면서 풍력자원이 많은 백두대간은 훼손되기 일보 직전이다.
생태계 보호 위한 관리·감독 포기한 정부
노후 원전의 안전성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한빛 1·2호기, 한울 1호기, 고리 3호기 원자로 건물 내부 철판이 부식되고 구멍까지 뚫려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고리 4호기 1차 냉각재 누출과 월성 4호기 핵연료 추락사고도 발생했다. 아직 통과는 되지 않았지만,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규제프리존법’)은 생태 농단의 백미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지역에 전략산업을 선정하는데, 기존의 개별 법안들이 적용되지 않도록 해당 지역에 규제완화 특혜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즉, 개별 법안들에서 개발을 금지했던 절대농지, 그린벨트, 자연환경지구, 계획관리지역, 녹지, 보전산지 등에 공장 입지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다. 또한 규제 특례와 더불어 기업실증 특례를 제공하여 정부가 아닌 기업이 제품의 안정성을 검증하고,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규제프리존 특별위원회 심의만 받게 된다. 정부의 생태계 보호를 위한 관리·감독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정농단으로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이 퇴보하는 것과 동시에, 생태 농단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지속가능성도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다.
유신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정부는 생태 문제에 대해서도 유신체제 시기와 유사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를 추구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 있는 흐름과도 무관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위상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던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현재 환경부 장관 산하의 유명무실한 위원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연 정유라의 승마용 말 구입이나 본인의 피부 리프팅 시술 만큼이나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에 관심을 가졌을까?
경제성장을 위해 생태계 희생 당연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유신체제의 종언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동의하면서도 충분치는 않다고 생각한다. 유신체제의 생태 농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생태 농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 일변도의 개발독재 패러다임을 지속가능발전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이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지금 환경부 장관 산하에 있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복원시키는 구체적인 일에서부터 시작하자.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의, 행정력을 담보한 위원회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위원회에서 국가의(지방정부도 포함해서) 주요 정책을 지속가능발전이라는 큰 비전과 가치 속에서 제대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형식적인 요식절차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정의와 생태적 건강성이라는 가치가 경제성장보다도 더 우선시되도록 권한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이 경제와 환경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경우는 늘 환경이라는 새로운 상품과 시장의 개척으로 귀결되었을 뿐이다. 지속가능성의 본래 취지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새만금 간척사업에 이미 3조원을 썼으니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3조원이 들었더라도 우리 미래세대를 고려할 때 지속가능하지 않으니 이제라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의 취지에 가깝다.
미세먼지를 줄인다면서 석탄발전소를 늘리는 역주행도 지속가능발전이 아니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고 원전을 늘리는 일이나, 풍력발전이 친환경적이라고 하면서 멀쩡한 녹지를 훼손하면서 풍력발전기를 마구 세우는 것도 지속가능발전이 아니다. 원전 운전 중에도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어 건강과 생명의 위협과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월성군 나아리 주민들의 이주대책 요구를 외면하는 것도 지속가능발전이 아니다.
이제 생태적 가치와 사회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가 경제성장보다 우선하는 지속가능발전이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지속가능발전 목표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우리 실정에 맞도록 그 목표들을 수용하고 조정하여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번 대선이 절호의 기회다. 대선후보들은 네거티브 공략을 중단하고, 생태 농단을 넘어서서 지속가능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들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혹독한 겨울을 넘기며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의 열망에 제대로 부응하는 길이자, 유신체제의 진정한 종언을 가져오는 길이다.
<이상헌(신한대 교수, 녹색전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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