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윤회 문건 보도 막고 다른 기삿거리 제공하라"
특별취재팀 입력 2017.05.03. 17:13
청와대에서 KBS 사장 선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박한 사실이 수첩에 기록되어 있다.
<시사IN>이 추가로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20권에는 언론 관련 메모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안종범 업무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를 비교해보면 당시 청와대에서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6월과 7월에 작성된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KBS에 관한 메모가 눈에 띈다. 먼저 당시 상황을 짚어보자. 2014년 5월9일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게 논란이 되었던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퇴했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김 국장은 “길환영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에 개입했다”라고 폭로했다. 이후 KBS 기자협회와 양대 노조가 제작 거부와 파업에 들어갔고, 6월5일 KBS 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이 7대4로 가결되었다. KBS 이사회는 6월23~30일에 사장 후보자를 공모했고, 7월9일 조대현 전 부사장을 신임 KBS 사장 후보로 선정했다.
2014년 6월15일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티타임’이라고 상단에 표시했다. 이날 메모에 ‘18일 KBS 이사회’ ‘KBS 사장’이라고 적혀 있다. 김영한 업무일지에도 같은 날짜에 ‘KBS 정기이사회-사장 임명 논의(7/10까지는)’라고 쓰여 있다. 6월28일에 작성된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고대영 조대현’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두 사람은 당시 KBS 사장 후보로 거론되었다. 7월3일에 작성된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KBS-조대현 7’이라고 적혀 있다. 김영한 업무일지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메모가 작성되었을 때에는 청와대가 공영방송을 간섭하고 통제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에 대해 청와대는 ‘어떤 형태의 물밑접촉이나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후임 사장 인선과 관련해서도 ‘한국방송 이사회가 알아서 할 일이지 청와대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발표와는 달리 청와대 내에서 KBS 사장과 관련해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KBS와 관련한 안종범 업무수첩 기록은 또 있다. 9월3일에 작성한 안종범 업무수첩 상단에는 ‘실수비’라고 표기돼 있다. 실수비는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뜻한다. 여기에 ‘2-서울신문 사설’이라고 적혀 있다. 이날 <서울신문>에는 ‘뉴라이트 학자의 잇단 정부기관 진출’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9월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KBS 이사로 추천했는데,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이를 비판했다. 이인호 교수의 KBS 이사 추천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교수가 KBS 이사로 추천되자 일각에선 공영방송 길들이기 수순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썼다. 같은 날 쓴 김영한 업무일지의 기록은 더 상세하다. ‘서울신문(정부 2대 주주). 구독 중단. 이인호 위원장 임명 내정’(그림 1).
안종범 업무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대한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2014년 8월8일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실장님> 3. 방송심의회 중요’라고 적혀 있다. 같은 날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방심위 기능 중요. 언론환경 악화에 따른 문제 보도 범람. 시스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활용 방안을 마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그림 2). 6월28일자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JTBC 뉴스 가치 왜곡 사례-list up’이라고 기록돼 있고, 7월2일자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JTBC/ 문창극 KBS 보도-중징계-방심위’라고 적혀 있다. 안종범 업무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를 살펴본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심위는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여야 합의기구인데 청와대가 비판적인 언론에 압력을 넣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험한 발상이고,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심각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불리한 보도에 ‘불이익 줘야→집요함 필요’
안종범 업무수첩에 언론 관련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시기는 2014년 12월이다. 2014년 12월7일을 뜻하는 ‘12-7-14 티타임’이라고 적힌 기록에 ‘<실장님> 1. 기사거리 줘야-평소보다 많은 홍보 자료 제공 필요’라고 적혀 있다. 12월9일자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헌법:언론 자유 but 타인 권리와 명예 훼손하면 안 된다. 언론 올바르게 계도할 필요 있다. 정부 위상→국민 이익 위해 필요’라고 적혀 있다. 왜 이런 내용이 등장할까. 당시는 11월28일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을 보도하고 12월10일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검찰에 출석했을 때다. 12월7일에 적은 김영한 업무일지는 왜 기삿거리를 줘야 하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 적혀 있다. ‘12/2 예산 통과로 국회 기사 별무→문건 사건 보도 빈발 우려→기사꺼리 풍부히 제공토록.’ 메모 옆에는 ‘長’(장)이라고 적혀 있다(그림 3).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을 뜻한다. 정윤회 문건 관련 보도가 많을 것 같으니 정부가 다른 기삿거리를 언론에 제공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안종범 업무수첩의 관련 기록은 1월 초에도 이어진다. 2015년 1월5일에 적힌 기록은 이렇다. ‘<실장님> 1)정윤회 문건 등 허위 2)정윤회 박지만 ○○ 박관천 ○○ 3)세계일보 허위 보도. 남은 수사 계속’.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수사를 강조한 것이라 보인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인터넷 언론과 외신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실장님> 10. 자주일보, 통일뉴스 등 매체 허가 쉽게 하고 있음→심의기준 강화 (중략) 17. 외신 관리 신경 써야-NY Times’ 2015년 3월11일 ‘실수비’ 회의 내용이다. 인터넷 신문의 등록 허가 권한은 광역지자체가 갖는다. 북한 관련 기사를 주로 보도하는 자주일보와 통일뉴스의 등록은 서울시 소관인데, 매체 허가를 쉽게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메모가 등장할 즈음인 3월9일 <뉴욕타임스>는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을 종북 척결 캠페인과 연결시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14년 7월2일자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실장님> 2. 언론환경. 권위, 신뢰성 실추 방지. 불이익 줘야→집요함 필요’라고 되어 있다. 세월호 관련 보도가 많이 나올 때였다. 언론과 관련한 안종범 업무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 내용을 검토한 최진봉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심의기관(방심위), 구독 중단, 심의기준 변경 등 활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방송사, 신문사, 인터넷 신문에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며 언론을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의 자율성을 인정치 않고 언론 자유를 억압하려 했던 내용을 담은 중요한 자료다.”
특별취재팀(주진우ㆍ차형석ㆍ김은지ㆍ신한슬 기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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