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행복과 평화 대자유에 이르게 하는 열린 마음 열린 세상

장백산-1 2017. 5. 2. 11:11

행복과 평화 대자유에 이르는 길


無念(무념), 無相(무상), 無住(무주)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 행복의 조건으로 재(財, 재물욕), 색(色, 색욕), 식(食, 식욕), 명(名, 명예욕), 수(垂, 수면욕)이라는 다섯 가지 욕심의 즐거움을 성취하고 누림이 우선이겠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또는 오욕락을 멀리하며 열반 해탈(解脫)을 목표로 정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제도적인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난 행복 누림의 자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과 자유는 둘이 될 수 없는 하나이며 수레의 두 바퀴, 새의 두 날개와 같다 하겠다. 불교의 모든 경전의 시작은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출발해 신수봉행(信受奉行)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법신불(法身佛)과 보신불(報身佛)과 화신불(化身佛)은 이름으로 나뉘어진 세 부처일뿐, 세 부처는 세 부처가 아닌 하나이므로, 석가모니부처와 그의 제자들과의 반복되는 대화체로 불경이 구성되어 있다. 불경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엮은 책이다. 그런데 印度에서는 유마힐이라는 거사의 가르침이 「유마경」으로, 중국에서는 혜능스님의 가르침이 「육조단경」으로, 경(經)으로 이름 붙어져 밝은 빛을 더해 주고 있다. 여기서는 육조단경의 핵심사상인 무념(無念)과 무상(無相), 무주(無住)에 대해 설명하려한다.


먼저 무념 무상 무주를 설명하기 전에 모든 불경에서 사람들의 집착심에 대해 색깔과 무게가 다르긴 하나 모든 경전이 이 집착심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착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요, 집착심에서 자유로운 것이 열반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탈과 열반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인간들이 앓는 모든 병은 이 집착심에서부터 비롯된다. 쥐고 모으고 챙기려하는 소유욕이 병을 만들고 넘치고 지나친 소유가 재앙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무소유(無所有) 무집착(無執着)에 이르는 길을 육바라밀(六波羅蜜)과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을 통해 행복과 자유즉,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다.


먼저 무념(無念)에 대해 설명하겠다.

경전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불(不)의 반대는 시(是), 색(色)의 반대는 공(空), 무(無)의 반대는 유(有)다. 그러므로 무념(無念)은 유념(有念)의 병을 치유하고 바르게 드러내기 위해 없을 무(無)를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의 노예인 유념(有念)에서 생각의 자유로움에 이르는 것이 무념(無念)인데 이는 곧 생각의 평화, 진정한 생각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프로이드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생각의 끌어들임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직접 또는 간접으로 경험하고 상상했던 일들이 꿈속으로 까지 이어지며 생각이 윤회(輪廻)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 귀, 코, 입, 몸, 뜻을 통해 이어지는 잡념(雜念)을 줄여나가는 것이 정신수행의 첫걸음이다. 덜어내며 비우며 지우는 것으로 시작해 텅~빈 충만에 이르는 것이 무념(無念)이다. 생각은 남이 내게 준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나 그 뿌리와 흔적이 깊고 진하면,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거나 근심걱정을 키우게 된다. 생각은 타인(他人)이 원인제공은 할 수 있으나 생각의 노예에 이르는 것은 남 탓이 아닌 내 탓인 것이다. 생각의 윤회를 거듭하는 주체도 나이지만, 생각의 윤회에서 벗어나야 할 의무도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념(無念)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생각을 일으키되 그 생각에 머물지 않는 생각의 윤회로부터의 자유를 뜻함이다. 


다음은 무상(無相)이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허상과 허울, 티내고 으스대며 명분과 실리(實利)로 둔갑하길 좋아한다. 이것이 有相이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보면 有相인 형식과 체면유지 모양새와 명예 등이 참으로 부질없는 허깨비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無相)은 죽음에 이르기 전에 유형· 무형의 온갖 형상들이 전부 덧없음을 알아차려 형상과 틀에서 자유를 누리라는 가르침이다.


다음은 무주(無住)다.

돈, 재산, 명예, 사랑, 성공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은 것이다. 영원하다는 것은 거짓 말일 뿐 머뭄없이 끊임없이 변하면서 흘러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일 뿐이다. 머뭄에서 자유롭게 풀려나 모든 것에서 자유로와 지는 마음이 진정한 의미의 무주(無住)이다.


가져온 곳 : 블로그 > 이향봉 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