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백봉 김기추 거사 어록(1602~1650)

장백산-1 2017. 7. 31. 13:46

백봉 김기추 거사 어록(1602~1650)


1601. 선(禪)이란 슬기자리, 지혜광명을 캐내는 건데 조용히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이 필요해요. 

        내 마음이 경계에 머물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을 조용히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것이 禪고, 

        내 생각이 사량분별을 하지 않는 것 요것이 禪이에요.


1602. 지금 당장의 마음, 이 말쑥한 자리, 절대성의 자리, 슬기자리 이거는 분별 망상 번뇌에 가려져서

        나타나지 못하는 거거든. 분별 망상 번뇌를 쉬면 지금 당장의 마음이 지금 여기에서드러나는데 

        요걸 딱 확인하고 터득하는 것이 禪, 法, 道, 佛, 心이라.


1603. 밥 먹을 때도 절대성의 자리인 '내'가 밥 먹는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옳지 절대성의 자리인 '내'가 일을 한다. 절대성의 자리인 '나'라는 성품이 自性이 없는 이 손을 

       시켜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이 사실 이걸 놓치지 않으면 이것이 선(禪)이에요.


1604.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슬기자리, 절대성의 자리가 사량분별심로 가려져서 어두워져 있거든, 

        흙탕물처럼 되어 있어. 이 사량분별심을 거둬내면 돼. 그러면 밝은 슬기자리가 저절로 드러나.


1605. 사량분별심, 즉 내  마음의 당처, 지금 당장의 마음, 절대성의 자리를 그대로 죽하게 놓치지 않는 

        것이 禪임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뭣을 하든지 절대성의 자리인 나란 걸 놓치면 안돼. 

        지금 당장의 마음, 절대성의 자리인 내 텅~빈 바탕 성품을 놓치면 안돼. 이게 진짜 禪이라.


1606. 화두를 가지는 것도 분별 망상 번뇌 잡념, 사량심 분별심 분별의식을 깨부수어 버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에요. 어수선하고 산란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는 수단이에요. '내'가 사무를 본다. 

        '내'가 설법을 듣는다. '내'가 누구하고 이야기 한다. 이것도 화두에요.


1607. 의심이 나야 지금 여기 내 마음이 다른대로 도망을 안가. 의심 난거를 이상타 이상타 이렇게 

        골돌하게 생각하면 다른 분별 망상 번뇌 잡념이 없어져 버린단 말이에요.


1608. 죽을 때도 아 '내'가 죽는다. 이 껍데기 성품 없는 육신과 '내'가 인연 끊는다.


 1609. 이 절대성의 자리인 '나'를 죽을 때도 고대로 가지고 가는 거지요. 이 절대성의 자리인 '내'가 

         탁 몸에 박혀 놓으면 그대로 훤히 알아버리는 거예요. 절대성의 자리인 '내'가 이걸 한다 잊지 

         않으면 차차차차 지혜광명이 드러나는 거예요.


1610. 禪을 수행할 때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광명의 계시가 나타나도 이걸 진짜로 믿지 마세요.          

        절대로 자신의 분별 망상 번뇌가 만들어 낸 거라고 이리 생각해야 됩니다.


1611. 참선 중에 허깨비 같은 거, 목이 열둘 달린 것이 나타나도 전부 나의 분별 망상 번뇌가 만든 겁니다. 

       그러니 그런 허깨비 같은 것들을 겁낼 필요도 없이 분별 망상하는 내 마음이 방정맞아서 이런 허깨

      비 같은 것들이 생겨나는구나 이리 생각해야 합니다. 이까짓 허깨비들 왔다가 없어지는 겁니다.


1612. 참선할 때 하늘에서 노래 소리도 들리는데, 내 노래가 아닌데 누가 한 거냐? 내 분별 망상이 

        만든겁니다.


1613. 참선할 때 부처님이 나타나더라도 쳐버려야 됩니다. 광명이 나타나더라도 그대로 무관심해야 

        합니다. 도깨비나 그 무엇이 나타나더라도 그냥 무심해야 합니다. 


1614. 선지식을 택하지 못하고 호나 마음공부한다고 하다가 미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광명이 나타나고 

        부처님이 나타날 때 이걸 진짜로 알면 돌아버립니다. 못씁니다 잘못된 길입니다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1615. 예수교 믿는 사람들 중에도 딱 앉고 눈감으면 예수님이 나타나고 광명이 나타나는 사람 있어요. 

        허깨비 같은 그걸 진짜인 줄로 알거든요. 그 사람 눈동자 보세요. 눈동자 확 돌았습니다.


1616. 비둘기가 막 날고 구름이 날고 이래요. 이거 그 사람 분별 망상 번뇌가 만든 건데 그 사람은 몰라요. 

        허깨비 같은 이거 무관심하면 그냥 사라져버려요.


1617. 참선할 때 광명, 부처님, 꽃, 맑은 구름 등이 훤하게 나타나더라도 분별 망상하는 내 마음이 그만큼 

        가라앉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되지. 어떤 부처님이 와서 그렇게 해 준다 어떤 하나님이 와서 그렇

        게 해 준다 이리 생각하면 공부 안 됩니다. 머리가 돌아버리기 쉽습니다.


1618. 계시도 자기가 생각하는 분별 망상 번뇌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지 누가 해주는 것으로 알면 더 

        이상 공부가 안됩니다. 계시 받았다면 어떤 마구니에 씌었다 이렇게 단정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1619. 계시를 줄 자 누가 있고 계시를 받을 자 누가 있나요? 계시를 주는 사람의 당처와  받는 사람의

        당처가 하나로 동일한데, 누가 주고 누가 받는단 말이에요?


1620. 뭐가 나타나도 거기에 취미 붙이면 마구니 장난에 놀아나는 겁니다.


1621. 완전한 인간이라면 空의 이치, 空理에 도달한 無心한 사람이에요. 무엇인가 마음에 하나 

        걸려 놓으면 이거 마음공부 잘 안 되는 얘기에요.


1622. 간절한 생각이 있으면 비몽사몽간에 내가 간절히 생각하는 장소에 갈 때가  있을 거여. 이거 

        識, 분별 망상 번뇌라는 분별의식 분별심의 장난이거든 내 識, 내 알음알이가, 나의 여김이 

       간절한 생각에 반영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라.


1623. 나의 청정무구한 法身이 어딘들 못가겠어요? 나의 법신이 오고 감이 없이 드러나서 느낌으로 

       응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렇게 안 되는 이유는 이 肉身 色身이 나라는 생각이 인식이 몇 천만 

       년 전부터 콱 박혀놓아서 이 생각 인식이 요놈이 잘 안 떨어져.


1624.  육신 색신이 나라고 여기는 생각 망상이라는 장벽이 청정무구한 법신 자리, 절대성 자리, 텅~빈

         성품, 텅~빈 바탕 순수 진공의식을 딱 가리고 있거든. 그러니까 大道가 스며들지 못 합니다.


1625. 상대성은 변(變)하기 때문에 상대성에서는 生과 死의 뿌리를 뽑아버리지 못하는 이 이치를 모르면 

        전부 깜냥대로 자기 뜻에 합리화 시켜서 이러쿵저러쿵 해봤든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한 가지에요.


1626. 가죽주머니에 들어앉은 생각이 머리털만큼이라도 있으면 지혜가 비치지 못 해.


1627.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기묘하게 안 생긴 것이 없어요. 어느 것 하나 천지의 이치가 안 담긴 것이 

        없어요. 모두가 천지의 조화에요. 내 지금 팔 하나 까딱하는 거 이거 기묘한 천지의 이치고 천지의 

        조화에요. 참 희한한 천지의 이치입니다.


1628. 호념(護念)이란 반야지혜(空의 지혜)로 자신의 심불(心佛 마음부처)를 지키되 생각 생각이 뚜렷이 

        깨어있고 밝아서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일체 현상에 끌리지 않고 生과 死의 業緣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1629. 여래의 부촉이란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如來知, 本來知, 根本知, 절대성의 자리에 맡기되 생각생각이

       맑고 밝은 스스로의 성품이 究境地인 해탈위에 오르도록 권유하는 것이라.


1630. 금강경의 첫 장면은 용(用)을 거두어 체(體)를 보이시는 자리이니, 動靜이 쉬었으니 거래가 쉬고, 

        취하고 버리는 분별하는 생각 마음이 끊기고 삼세를 여의었으며 천당과 지옥이라는 분별 망상이 

        무너진 본래 고향의 소식이니 어찌 부처의 32상 80종호를 보고 희한하다 했겠는가?


1631. 석가모니부처님의 뚜렷한 지혜를 보고 희유하다고 감탄했을까? 아니다. 팔만사천법문도 삼천성교가 

       되고, 삼천 성교도 거두면 三乘이 되고, 三乘을 거두어들이면 一乘, 一法이 완연하다. 숫자가 많아도 

       일승, 일법, 하나에서 왔는데, 이 하나는 어디서 왔노? 執一含三 會三歸一이라 

       이 하나(ㅡ)는 머리없는 쇠소(鐵牛)의 혓바닥에서 왔다.


1632. 금강경 첫 모임의 광경은 피아가 분명한 것 같고, 사리가 정연한 것 같고, 보는 이와 보이는 이가 

        뚜렷이 분별 구분 구별되어있는 것 같지만, 본래로부터 의젓하여 움직이지 않는 당처(當處), 절대성

        자리에서 볼 때는 허망하여 실답지 않은 것이다. 모두가 청정한 비로자나불의 분신으로 등장하여 

        제각각 제 나름대로의 인생놀이, 연극놀이, 환상놀이를 공연하는 것이다.


1633.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자리를 펴고 정좌하실 새 모든 불보살과 구류중생 삼라만상은 제 각기의 인연과 

       기틀을 쫓아 제 각기 대로의 경계를 이루는 듯하나, 그 法은 圓寂하여 소소영영하므로 천번 변하고 

       만번 변하나  그 法은 변하지 아니하고, 그 道는 영통하여 現顯하므로 천번 변하고 만번 변하나 그 道

      는 변함이 없고 오고 가지 아니하니, 이 소식처. 절대성의 자리가 보리요, 바라밀이라.


 1634. 이 소식처- 우리의 법신 - 절대성의 자리는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으면서 똑똑하다, 움직지도 

       아니하고 정지하지도 아니하면서 ㅣ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너무나 뚜렸하고 역력하다. 

       생겨남도 없고 죽지도 아니하면서 역력하고 뚜렷하다.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면서 훤하다.


1635. 절대성의 자리 - 우리 모두의 청정한 법신 자리 이 세계는 방위도 없고 안과 밖도 없고 大小도 없고

        수량마저도 없으면서 되돌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무진장의 세상, 불가사의한 세계니라.


1636. 우리 모두는 頓悟無生(돈오무생)인 空寂體 중에서 제각각의 業緣대로 우뚝하심을 알고 태고의 

      소식을 드러내는 마당이어서 희유하다고 수보리 장로께 그렇게 감탄하신 것입니다.


1637. 사실 우리 모두는 공적체- 허공성- 텅~빈 바탕 성품- 말쑥한 자리- 비로자나불- 법신의 세계 -

      절대성의 자리 속에 있어요. 


1638. 천상도 지옥도 허망한 환상이라 영원한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


1639. 분별 망상하는 내 마음 씀씀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알(卵)로도 태(胎)로도 화(化)로도 습(濕)으로도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신이 그리 하라 하지 않아요.


1640.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安心하고 살아야 합니다. 安心하려면 나의 본질, 우주의 본바탕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렇더라는 말만 듣고 믿는 것은 安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말 들으면 변해요.


1641. 믿음은 확실하게 먼저 알고 믿어야 합니다. 아는 것은 깨달은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주의 진리, 나의 본질, 우주의 본바탕, 절대성의 자리를 알아버려야 安心할 것 아니에요?


1642. 불교는 이거 肉身 色身은 상대적으로 변하는 거라. 그러니까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거라. 

        진짜 나, 본래의 나, 청정한 법신 자리, 절대성의 자리가 있단 말이지. 보고 듣고 말하는 엄연한 

        본래 텅~빈 바탕 성품 자리가 있다는 말이지.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1643. 천당 지옥도 누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는데, 자기의 분별 망상이 만들어서 자기가 가는 거예요.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1644. 마음이 들뜨고 청정하지 못하면 알로 태어나거나(卵生), 태로 태어나거나(胎生), 습으로 태어나

        거나(濕生), 화(化)로 나는 거라(化生).


1645. 같이 어울려 살아도 어떤 사람은 맨날 울고만 지내. 어떤 사람은 만날 웃고만 지내.        

        전부 자기의 분별 망상하는 마음 씀씀이에 따른 업연관계로 그렇게 되는 것이거든요.


1646.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그 분별 망상 환상도 法을 굴리는 하나의 모습놀이 아니에요? 

        모습놀이-개념놀이-환상놀이에서 永遠性을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 맞아요. 천당에서도 

        지은 복덕이 다하면 오쇠(五衰)에 든다 그래요. 지옥에서도 지옥의 그 과보를 마치면 

        인간이나 천상에 날 수 있는 거예요.


1647. 도인들은 큰 벼슬 안하려고 합니다.


1648. 이 세상 살면서 약한 사람들은 業을 덜 지어요. 약하고 못나서 業을 덜 지어요. 이 세상에서 떵떵

        거리는 사람들은 엄청난 業을 지어요. 그러면 나중에 후생에 이 세상 좀 모자라게 사는 사람들의 

        심부름 꾼 되는 거라.


1649. 마음을 청정하게 해서 자성을 밝히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에요.

        분별 망상 번뇌 아상을 버림으로써 淸淨心, 절대성의 자리가 드러나는 겁니다.


1650. 나는 못난 중생이다 하면서 자꾸만 業대로 끌려 다니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