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이재용 판결문에 담긴 박 전 대통령 '중형 코드'

장백산-1 2017. 8. 25. 18:43

이재용 판결문에 담긴 박 전 대통령 '중형 코드'

윤창희 입력 2017.08.25. 17:37 수정 2017.08.25. 18:17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433억 원 상당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기소된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된 이 부회장에 대해 특검 구형(12년)에 크게 못 미치는 형량이 선고된 데 대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부는 유죄 판단 시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 형량을 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선고에서 핵심 혐의인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을 뇌물 유죄로 판단했다. 또 최 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와 관련된 횡령과 재산 국외 도피 혐의도 유죄로 인정하면서 5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겐 각 징역 4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은 실형이 선고됨에 따라 법정 구속됐다.


"정유라 지원은 대통령 도움 바라고 이뤄진 일"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은 모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작업이었고, 이는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또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의 승계 작업이 사회 일반에 공론화돼 있었고 청와대에서도 관련 보고서 등을 작성한 점에 비추면 박 전 대통령도 승계 작업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배경을 토대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이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에 나선 것은 승계 작업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바라고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독대 과정에서 승마 지원을 요구한 것을 삼성 측도 정유라 지원 요구로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를 실무진에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 이뤄지는 동안 이재용은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하고 승마 지원에 대한 포괄적 지시를 했다. 최지성에게서 승마 지원 보고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며 "결국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해 범행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특검이 기소한 뇌물 약속액 213억 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은 뇌물 아냐"

재판부는 또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뇌물과 연결된 횡령과 재산 국외 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가 설립했다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2천800만 원을 후원한 부분도 "정상적인 단체가 아닌 것을 알고 지원했다고 보인다"며 뇌물로 인정하고 역시 횡령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나가 승마 관련 지원 등을 보고받지 못했다거나 최 씨 모녀를 모른다고 대답한 것도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 원에 대해선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재단이 최 씨의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설립·운영된다는 걸 이재용 등이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로 출연했다기보다 전경련이 정해준 액수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년형 선고 이유는

재판부는 유무죄 판단을 끝낸 뒤 이번 사건에 대해 '현대판 정경유착'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이 밀접히 유착한 것"이라면서 이 부회장에 대해 "청탁 대상이었던 삼성 경영권 승계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지위에 있고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주요 혐의 5개를 모두 인정하고, 이 부회장이 '현대판 정경유착'을 주도했다고 비판했지만, 재판부는 유죄판결 시 내릴 수 있는 가장 낮은 형량을 골랐다.

왜 그랬을까.

양형 사유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했다기보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지원했다는 삼성 측 주장을 재판부가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또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추진이 개인 이익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도 양형에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판결로 본 박 전 대통령 예상 형량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뇌물수수죄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 유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이 부회장의 재판은 형사27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형사22부(김세윤 부장판사)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재판부가 다르다 해도 사실관계나 주요 증거나 법리 판단은 대동소이한 만큼 '준 사람은 유죄인데 받은 사람은 무죄'와 같은 모순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판결문을 본 법조계 인사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량도 중형 선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 중 가장 무거운 범죄는 뇌물수수죄인데, 이는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뢰액 1억 원 이상인 경우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징역 10년 이상으로 돼 있다.

5억 원 이상 뇌물수수의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기본 형량은 징역 9년~12년으로 돼 있다. 여기에 사유별로 형을 가중 또는 감경하도록 하고 있다.

감경요소는 ◆가담 정도 및 실제 이득액이 경미한 경우 ◆진지한 반성이 있는 경우 등이다.
반면 가중 요소로 ◆수뢰 관련 부정 처사 ◆ 적극적 요구 ◆피지휘자에 대한 교사 등이 규정돼 있다.

오늘(25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판결에서 "(이재용 부회장 등)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했다기보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뇌물수수자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는 얘기로, 양형 시 가중 사유가 된다.

이 경우 대법원 양형 표에 따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중된 양형 기준은 '징역 11년 이상, 무기징역'이 된다. 여기에 또 다른 혐의인 직권남용이나, 강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까지 인정될 경우 형량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이날 재판부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이 최 씨의 사적 이익 추구 수단이었고, 박 전 대통령이 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뇌물죄 외에도 주요 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유죄 예상에 더욱 힘을 주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 선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윤창희기자 (thepla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