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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꿀 수 있는 것, 바꿀 수 없는 것

장백산-1 2017. 10. 4. 17:27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바꿀 수 없는 것


사람들의 인생 삶 세상에는 직접적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즉, 인생 삶 세상에는 인간인 나의 의지로써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인간의 가장 큰 골치거리 문제는 내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별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없는 것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욕심내고 집착하면서 어떻게든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이 의지(意志)로써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또 내가 직접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아주 단순하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은 직접 내 의지로써 변화시킬 수 있지만, 내 ‘밖’에 있는 것들은

직접 내 의지로써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내 의지로써 바꿀 수 있는 안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 의지로써 바꿀 수 있는 내 안의 그것들은 바로 생각(마음)과 말과 행동이다. 


생각하기, 마음먹기, 판단하기, 욕망하기, 해석하기, 분별하기, 말, 행동은 내가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신구의(身口意 : 행동 말 생각) 삼업(三業)이다. 이러한 삼업

(三業)은 내가 내 안에서 짓는 것들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 생각 말 행동(三業)을 바꿀 수가 있다.


그러면 직접 내가 바꾸고 변화시킬 수 없는 내 바깥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세 가지 業을 지으면, 즉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행위를 하면 내 바깥 세상에서는 그 三業에 

따른 결과인 과보(果報)를 내게 보내준다. 즉 삼업에 따른 결과, 과보인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지금 여기서의 내가 직접적으로 바꿀 수가 없는 것들이다. 


이미 억겁의 전생이나 과거 내가 지었던 원인(因)인 삼업이 緣(연)을 만나 인연가합을 이루어 현실로,

즉 果報로서 나타나는 것인데, 그 과보, 현실을 지금의 내가 무슨 수로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즉, 지금의 내 의지로써 바꾸기 어려운 내 바깥의 것들로는, 부자가 되는 것, 남들에게 대접받고 칭찬 

받는 것,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는 것, 인기를 얻는 것, 욕 얻어 먹지 않는 것,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는 

것,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는 것, 살기좋은 나라에 태어나는 것, 좋은 부모님과 좋은 환경을 받아 태어

나는 것, 좋은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 병이나 장애가 없는 건강한 몸을 얻는 것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내 외부에서 오는 것들, 즉 과거 삼업에 따른 과보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의 의지로써는

직접 바꾸고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쉽게 말해 내 안에 있는 생각, 말, 행동 등은 직접 내 의지대로 바꾸기가 쉽지만, 내 밖에 있는 인기, 

조건, 환경, 부, 지위, 명예, 존경, 인정, 좋은 부모 등은 내가 직접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어 경제력, 돈은 내 바깥 경계(대상)이기에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바뀌고 변화가 안 되지만, 

풍요로운 마음, 안정적인 마음, 만족감 등은 내 내면의 경계(대상)이기에 내 의지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단순하게 내 의지로써 바꾸기 어려운 내 바깥 것들에 목숨 걸지 말고, 내가 직접 바꿀 

수 있는 내 안에 있는 것들에만 생각을 하고 마음을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유독 바꾸기 어려운 내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집착

하고 매달리는 마음을 쓰기 때문에 인생 삶 세상이 점점 더 골치아픈 괴로운 문제거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바깥에 있는 것들, 즉 조건, 환경, 지위, 명예, 인기, 존경, 인정, 부, 건강 등을 얻으려고 

평생 애를 쓰며 살다 허망하게 떠나간다. 


내가 내 의지로써 직접 바꿀 수 있는 것들인 내 마음(생각), 내 말, 내 행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은 내 바깥에 있는 것들에 있고, 결과에 먼저 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삶 세상이 

가면 갈수록 고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왜 내가 내 의지로써 직접 변화시키고 바꿀 수 없는 내 바깥에 있는 것들에 목을 매면서 인생 삶 세상을 

원망하고, 내가 내 바깥에 있는 것들에 구속되면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사는가?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고 욕심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만 내게 속한 것,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내 내면의 것에만 관심을 쏟으면 되는 것이다.


돈이나 집 자동차는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뜻대로 언제까지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내 것으로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내가 지었던 원인(因)인 신구의 三業의 

결과(果報)로 잠시 나에게 온 것들일 뿐이다. 명성, 명예, 지위, 인기, 영향력, 존경 따위 또한 나에게 

속한 것들이 아니고 다만 내가 지었던 원인(因)인 신구의 三業의 결과(果報)로 잠깐동안 내게 온 것들일

뿐이다.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삼업(원인)이 거룩했을 때 그에 따른 결과(과보)로서 세상 사람들이 내게

지위나 존경, 명성 명예, 인기를 보내는 것일 뿐이지, 그것들이 본래부터 이미 내 것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이 이와 같으니 인기가 있더라도, 존경을 받더라도 그것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인기 존경 등

그것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의지대로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기가 많고, 지위가 높더라도 그것은 내 의지(뜻)과는 상관없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그것들이 무너져서 사라져버릴 때 그것들은 결코 내게 미리 묻고 무너지고 사라져버리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이 무너지고 사라져버리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써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고통이나, 불행, 사고나 병이 찾아왔을지라도 거기에 크게 신경을 쓰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것들은 나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애초부터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게 찾아 온 고통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하거나,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욕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내 바깥에 있는 내 의로써 바꾸고 변화시킬 수 없는 그것들은 

우주법계에 속한 일일 뿐, 내게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 불행, 사고, 병 그것들은 내가 상관 할 바가 아닌 것이다. 나는 단지 내 길을 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러면 내 의지로써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를테면, 뜻하지 않은 불행한 일에 대해 ‘불행’, ‘고통’, ‘좌절’이라고 분별해서 이름붙이지 않는 것, 

불행한 그 일 속에서 삶 인생 세상의 의미를 찾는 것, 불행한 그일을 통해 깨닫는 것, 불행한 그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과 잠시 함께 있어주는 것, 불행한 그 일에 오히려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보

내주는 것, 불행한 그 일과 상관없이 따뜻하고 긍정적인 말과 적극적이며 확신에 넘치는 행동을 하는 

것, 그런 것들이 바로 그 고통스런 불행한 일 앞에서 사람들이 우리 의지로써 변화시킬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빨리 이 고통스런 불행이 지나가기를 바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 고통스런 불행이 언제 오고 언제 

갈 것인지는, 내게 달린 문제가 아니고 우주법계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바꾸려고 해 

봐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고통 자체가 아니라, 단지 그 고통에 대한 나의 해석, 판단, 마음가짐, 말,

행동 등 의업인 생각 마음과 구업인 말, 신업인 행동을 바꾸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남들이 나에 대해 나쁜 평가를 내리거나, 욕을 하거나, 미워하더라도 사실 나쁜 평가, 욕, 미움 그것은 

그들에게 달려있는 그들의 意業(생각 마음)일 뿐, 내가 상관 할 바는 아니라는 말이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가 좋아지도록 바꾸려 애쓸 일이 아니라, 정작 바꾸어야 할 것은 나를 좋게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바로 나의 마음 생각(意業)이다. 바꾸고 변화시켜야어야 할 것은 상대의 마음이 

아닌, 바로 내 마음이라는 말이다. 


상대방은 언제나 자기 業에 따라서 자기 스스로 내린 자기만의 판단과 해석으로 나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 판단 해석 평가라는 業은 전적으로 그 상대방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상대

방에게 왜 나의 진심을 못 알아 봐 주느냐고 따질 이유나 필요가 엇는 것이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판단 해석 평가, 즉 상대가 짓는 業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고 가슴 아파 한다면 

공연히 내가 그 상대방의 판단 해석 평가, 즉 業에 구속당하는 것일 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전혀 

따지고 대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서 나에 대한 판단 해석 평가, 즉 業을 하나 하나를 전부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만만에!


그렇게 나에 대한 상대방의 판단 해석 평가, 즉 業을 바꾸려고 애를 쓰느라 에너지를 쓸 아무 이유나 

필요가 없다. 상대가 이래나 저래나 그냥 그저 내버려두고 그냥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나에게 속한 

것만 신경 쓰면 된다.


이처럼 사실 인생 삶 세상이란 매우 단순하다. 내 의지로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내 의지로써 직접 바꿀 수 없는 것에는 신경을 끄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인생 삶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스런 문제는 끝이 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인생

삶 세상이 우리들 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