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너지로 병을 치유한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다 칩시다. 암(癌)에 걸렸다고 칩시다. 어떤 분들은 보니까 암환자에게 암세포와
싸워 이기는 상상을 하도록 시키기도 하던데요, 그렇게 암세포와 싸워 이기는 상상을 한다는 것은,
암세포와 싸워가지고 전쟁으로써 암세포인 적을 죽임으로써 나 혼자만 살아보겠다는 욕심내는 마음,
탐욕심입니다.
암세포를 어떻게 왜 적으로 여기는 상상 생각을 해야 합니까. 암세포는 결코 나의 적이 아니에요.
그 암세포 또한 나와 똑같은 중생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구제해야 할 중생 이예요. 암세포를 죽여버리
겠다는 생각을 가져선 결코 안 됩니다. 그 암세포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죽이려
하지 않듯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인 암세포를 죽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암세포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거지요. 내 내면에 있는 어떤 부정적인 부분, 탁한 에너지(기운),
어떤 선하지 못한 업(業) 같은 어떤 부분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부정적이고 탁한 기운들이
암세포로 물질화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암의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겁니다. 즉 내 내면에 쌓여있는
어떤 사랑이 아닌 부분, 자비가 아닌 부분, 밝은 지혜가 아닌 부분, 바로 그와 같은 부분들이 정상적인
세포를 기형적인 암세포로 변형시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이 아닌 암세포를 죽여 없애버리기 위해서 암세포를 죽여 없애는 방법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것은 암을 치료하는 근원적인 치유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암세포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무사히 마친 사람들이라 해도 삶을 사는 방식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어서 본질적으로 그 암의 원인이
치유되지 않으면 또 다시 암이 재발하거나, 다른 부위로 옮겨가서 재발하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현대 서양의학의 기본개념은 어디가 아프면 아픈 그곳을 딱 잘라내버리는 거잖아요. 그러나 그런
마음이나 그런 치료 방법으로는 온전한 치유는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암세포를 사랑하고 내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큰 자비의 마음, 너그러운 사랑의 마음으로써 암세포를
관찰하고 지켜보게 되었을 때 오히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암을 결코 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돼요.
내 몸 어디에 안 좋은 부분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나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안 좋은 그 부분들을
내가 먼저 사랑하고 자비로써 풀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 자비심이 바탕이 되면 그 어떤 문제도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마음이 발로가
되었다면 그 문제를 풀려는 그 일은 망치기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항상 내 마음 내 생각을 어떻게 쓰면서 살고 있는지, 나는 항상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
으로서 삶을 살아 나아가고 있는지, 사랑 자비 그 자체로서 이웃과 모든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이런
것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삶 속에서 항상 지켜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비심으로 그 일을 할 수도 있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어쩔 수 없이 모기 한 마리를 죽여야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화난 마음으로 짜증스럽게 죽일
수도 있고, ‘네가 미물로 태어났기에 이렇게 고생스레 살고 있구나,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수행을
하여 인간으로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자비로운 마음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고 염불도 하고 기도해
주고 어쩔 수 없이 그 모기를 죽인다면 이런 죽임은 앞의 화나고 짜증스런 마음으로 죽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죽임입니다.
죽여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무리 하찮은 미물도 죽여선 결코 안 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마음을 이렇게 써야 한다는 거예요. 밖으로 드러난 생각 마음, 말, 행동이라는
세가지 행위, 즉 三業 이면의 의도 의지가 ‘자비심’ '사랑의 마음'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깨달은 자는 살생을 해도 그 중생을 살리는 살생을 할 수가 있지만,
어리석은 중생은 중생을 살리면서도 그 중생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이면에 자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바탕이 됐느냐, 아니면 이기적인
마음이 바탕이 됐느냐는 이 차이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행위 그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행위 그 이면에 담겨있는 자비심, 사랑의 마음, 그것을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 마음의 근원에는 사랑에너지, 자비에너지가 언제나 영원하게 파동치면서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고 기억하세요. 우주삼라만상이 존재하는 이 우주법계 그 근원에는 무한하고 무량한
끊임없이 파동하는 사랑에너지, 자비에너지의 파장이 언제나 영원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의 근원, 우주법계의 근원에는 부정적이고 어둡고 탁한 에너지 같은 것은 없어요. 있다면 그것은
단지 내가 아상으로, 아집으로 만들어 낸 허망한 환상(幻想)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연습하면, 사섭법(四攝法 : 보시, 애어愛語, 이행
利行, 동사同事)과 사무량심(四無量心 : 慈, 悲喜, 捨 ; 자애로운 마음,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마음, 함께
기뻐하는 마음, 분별 차별하지 않는 마음)을 연습하면, 이렇게 연습하는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우주
법계의 근원, 마음의 근원과 곧바로 연결이 됩니다. 그 순간 우주법계가 다함께 기뻐하고, 우주만물을
도와주게 됩니다. 그와 같은 연결이야말로 사람들을 가장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근원적인 것입니다.
사랑에너지, 자비에너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파도처럼 밀려들어오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하고 축원 드립니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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