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諸法無我)를 알고 짓는 복이 진짜 복이다

장백산-1 2017. 11. 11. 08:41

'나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諸法無我)를 알고 짓는 복이 진짜 복이다 


무슨 때가 되면 사람들이 기복을 많이 하잖아요.

기복(祈福)이라는 이 말을 들어보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어리석은 사람이 그렇게 기복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기복은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기복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道는 나라고 여기는 존재는 연기적인 현상일 뿐이고, 영원불변하는 실체가 없기에 無我라고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볶을 닦으면 그건  괜찮습니다. 이게 진짜 복을 닦는 겁니다.[ 서장 ]에서는  이것을 청복

(淸福), 깨끗한 복이라 말합니다.


이같은 청복(淸福)  복은 남도 살리고, 나도 살리고, 내게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복이기  

때문에 이런 청복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복혜양족존(福慧兩足尊)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복(福)과 혜(慧) 둘 다 갖춘 분입니다.


청복은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닦는 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福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먹고 기복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진짜 복이 있고, 가짜 복이 있습니다.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을 전제로 보시하고 공양하고 복짓는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나라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생각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업(三業)도   

있다는  말입니다. 신구의(身口意)라는 삼업(三業)이 그대로 있어요.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것이고,  空이라서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알면 삼업(三業)으로 業을 지어도 그 業은 없어집니다.


나라는 존재가 영원불변하는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복을 닦으면 그 행위자체가  

삼업도 녹이고 죄도 멸하는 되는 겁니다.


'나라는 것이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서는 복을 제아무리 많이 짓더라도

욕심과  화내는 마음, 그리고  분별하는 어리석은 마음, 삼독심(三毒心)은 없어지지  않으니

이렇게 짓는 복은 진짜 복이 못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가짜 복짓는 것으로 죄를 없애고자 하더라도 

후세에 아무리 복을 많이 받더라도 삼업은 항상 따라 다닙니다.


그래서 이런 가짜 복짓기 그 복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아(無我)라는 생각에서 닦는 복이라야  

진짜 복입니다.


뒤에  나오지만 양무제가 '절 많이 짓고  보시했는데 복이  되느냐?'  하니까 달마 스님이 하는 말은

'공덕도 없고 복도  없다'  하지요. 양무제는 유아(有我)로,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복을 지었기 때문에 공덕도 없고 복도 없는 겁니다.


만약 양무제가 자신이 연기적인 현상일 뿐이고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자신이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안 후에 복을 지었더라면 그 복은 무량한 복, 무량대복(無量大福)이지요.

사람들이 무아냐 무아가 아니냐의 생각에서 복을 짓느냐에  따라서 무량대복의 향방이 갈리는  겁니다.

마음속에서 삼업의 모든 인연을 없앨 줄 알면, 무아라는 생각으로 삼업을 지워버린다는  말이죠.


이런 사람은 '나다- 너다'라는 일체의 분별심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불변하는 고정되고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라는 것이 없는데 무슨 삼업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나요. 무아라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을 진정한

참회라고 말합니다.


- 고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