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
금강경(金剛經)에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相을 取하지 말고, 자기가 眞如로서 如如하게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일상생활에서 如如한 본래마음을 쓰라)는 意味이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解釋)하면, 상(相)을 취(取, 집착함, 달라붙음)하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마음이 동(動)한다라는 意味, 마음이 흔들린다는 의미는 상(相)에 집착(執着)하는 마음을 뜻한다.
1. 그러면 상(相)이란 무엇인가? 먼저 相, 이걸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相이란 단순히 눈에 보여지는 모양, 모습, 형체만을 뜻하는게 아니다. 상(相 )은 광범위한 뜻으로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특성을 뜻하는 용어다. 오온(五蘊 :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의 相 (특징/특성)은 다음과 같다.
色蘊(색온) : 걸리는 것. 물질을 뜻하므로 허공처럼 안걸리는게 아니고 걸리적 거리는 것이 특성이다.
受蘊(수온) : 느끼는 것. 느껴지는 것이 특성이다.
想蘊(상온) : 취하는 것. 기억/생각/분별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行蘊(행온) : 짓는 것. 뭐든지 지어가는 것, 만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識蘊(식온) : 아는 것. 대상을 분별을 해서 아는 것이 특성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제 각각의 제 나름대로의 相(특성/특징)이 있다. 왜냐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각각 다 다르기 때문이다.
2. 그러면 왜 사람들은 상(相)을 취(取)하는가, 다시 말해 왜 상(相)에 집착하고 상(相)에 들러붙을까?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 분별되어 인식되어지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영원불변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들을 相으로 취(取)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항상하고 영원하다고 믿기 때문에 상(相)을 취(取)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無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땐 어떤 相도 取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이 연기법(緣起法), 즉 공(空)의 성질(空性), 무아(無我 : 고정된 실체가 없다)의 성질, 중도(中道 : 양변을 다 취함)의 성질을 깨닫지 못하면 相을 取할 수밖에 없다.
3. 그렇다면 무엇이 상(相)을 취(取)하는가?
중생의 시비를 하는 마음, 분별을 하는 마음, 비교를 하는 마음, 판단을 하는 마음, 해석을 하는 마음이 상(相)을 取한다. 중생은 늘 분별심(分別心)을 일으켜 상(相)을 취하고, 성인들은 분별을 하는 생각, 분별심(分別心), 사량심(思量心)이 없기 때문에 상(相)을 取하지 않는다. 상(相)을 취하느냐 取하지 안느냐는 내 분별을 하는 생각, 즉 분별심(分別心), 사량심(思量心)에 달려 있다.
4. 상(相)을 취(取)한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남자가 여자를 보는 것에 비유한다면, 남자는 몸매 잘 빠지고, 맵시 좋고, 얼굴 이쁜 젊은 여자(色)를 보면 마음이 動하여 흔들린다.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라는 相을 取하기 때문에 욕심(欲心)이라는 마음이 동(動)는 것이다. 눈을 통해서 보여지는 예쁘고 몸매 좋은 그 모습(相)을 마음으로 붙잡는다(取한다)는 의미이다.
상(相)을 취(取)한다라는 말의 뜻은 분별을 하는 생각, 분별을 하는 마음(分別心)이 상(相)에 집착(執着)하고 상(相)에들러붙어 상(相)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이게 집착심(執着心)이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에게 쌍욕을 해댈 때 욕(辱)이라는 소리(聲), 즉 相을 取하게 되면 그 相으로 인해 분별을 하는 마음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오게 된다. 여기서는 소리라는 상(相)을 取하기 때문에 분별하는 마음이 움직이고 흔들려서 화라는 에너지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다. 향미촉법(香味觸法, 냄새, 맛, 감촉, 현상)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5. 사람들은 왜 상(相)을 취(取, 집착)하는가?
사람들은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에 독립적으로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영원불변하는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항상 단 한 순간도 쉬지않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세상 어떤 어떤 것에도 집착할 필요나 이유가 없다. 만약 이 세상 모든 것은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것임을 안다면 분별을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사막의 신기루가 오아시스 물이 아님을 안다면 더 이상 신기루에 집착하지 않게 됨과 같다.
6. 사람들이 상(相)을 取하지 않고, 자유(自由)롭게 살려면?
물리적인 현상, 심리적인 현상, 모든 현상(現象)들을 자세하게 관찰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은 찰나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흘러간다는 사실(無常)을 이해하고, 결국 연기법(緣起法), 즉 空性, 空의 성질, 중도의 성질, 무아의 성질을 깨달아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의 무상(無常)함을 관찰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의 空性을 직접 터득함으로써 그 모든 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보여지는 것이 있던 없던 들려지는 것이 있던 없던 그 모든 것(相)에서 자유(自由)로울 수 있다. 相을 取하는 이유는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相)이 진짜라고 여겨서 그렇다. 진짜라고 여기니까 상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여지는 것(相) 들려지는 것(相 )등에 대해서 저건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사실을 안다면 더 이상 그같은 相에 집착할 가능성은 없다. 즉 相을 取하지않게 되어 분별을 하는 마음(分別心)이 動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相이라는 가짜에 속지 않기 때문에 분별을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진짜는 단 하나도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전부 다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거짓(幻/환)이다.
그럼 모든 부처님들과 모든 보살님들께서는 과연 누구에게 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인가? 거짓 가짜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중생이라는 거짓 가짜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가짜에게 자비를 베풀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었다는 자만심이 없으시다. 또한 중생들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들께 해를 끼쳐도 중생들을 미워하지 않으신다.
보여지는 부처님(법당에 설치된 불상) 역시 거짓(幻 ; 환)이나 알고 보면 법신(法身), 즉 환화공신즉법신(幻化空身卽法身)이다. 텅~비어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곧바로 진리, 청정법신이다.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이라는 말 역시 가명(가명, 임시 방편적인 이름)으로 거짓이다. 중생도 거짓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아주 유명한 게송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사물 모든 것엔 실체가 없어서 거짓이다. 진짜가 아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깨달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집착하지 않게된다. 이런 내용이 반야심경에 나온다. 일체의 모든 것들, 즉 모든 상(相)을 진짜라고 여기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싸그리 가짜임을 알고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일체개공(一切皆空), 오온개공(五蘊皆空), 즉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은 고정된 실체가 없어 空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어 空함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거짓, 가짜이다.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 느껴지는 것, 그 모든 것들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할 것이다. 즉 어떤 상도 취하지 않고 항상 여여하여 분별을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색(色) : 보여지는 것은 진짜가 아닌 거짓이다. 죄다 가짜다.
성(聲) : 들려지는 소리는 모두가 가짜다.
향(香) : 냄새는 모두 가짜다.
미(味) : 모든 맛은 진짜가 아닌 가짜다.
촉(觸) : 몸에 감촉되어지는 모든 느낌들은 가짜다.
법(法) : 모든 생각, 뜻, 마음은 가짜다.
이것들이 왜 가짜인가? 찰라찰라 끊임없이 변하면사 흐르기 때문에 가짜다. 고정된 진짜라면 변하겠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찰나찰나 변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가짜다. 존재이건 사물이건 모두 가짜다.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 냄새, 맛, 감촉, 생각 뜻 마음이 아주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것이 있되, 그것은 가짜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짜에 속아넘어가지 말라는 이 말이 바로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상, 가짜로 이런 상에 속지 말아야 여여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은 왜 중생이라는 가짜들 허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가? 모든 중생들은 진짜가 아닌 거짓 즉 허상이다. 그러나 모든 불보살님들께서는 그런 허상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신다. 왜 그러실까? 그것은 중생들이 비록 실체가 없는 허상이지만,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자신들을 실체로 여기고 집착하며, 자신들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욕심/탐욕이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그엏기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다. 행복을 바라지만, 불행이 올 수밖에 없다.
중생들이 겪는 고통은 사실 불필요한 고통이다. 자신을 실체라고 여기고 또 외부 사물들이나 외부 존재들도 역시나 실체라고 여기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 자신을 실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집착도 역시 없게 된다. 我空/法空(아공/ 법공), 人無我/法無我(인무아/법무아)이다.
영화 매트릭스 3편에 보면 아주 의미있는 대화가 나온다. 미스타 앤더슨 즉 네오와 요원과의 마지막 싸움 에서 네오는 거의 죽을 지경으로 얻어터지고 계속 지는데도, 계속 요원과 싸우기 위해서 일어난다. 그 때 그 요원은 네오에게 묻는다. 왜 왜 넌 왜 자꾸 싸우려고 일어나는냐 뭣때문에... 네가 아는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은 허상, 가짜이다 가짜다. 그건 너도 알고 있잖느냐. 그런데도 넌 왜 계속 나에게 대항하여 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느냐... why? why? why?
그때 네오는 대답한다. "내가 그러기로 결정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최후의 적인 요원(분별 망상 번뇌)을 물리치고 전쟁을 종식시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된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비록 중생들이 실체가 아닌 가짜이며 허상이지만, 중생들이 행복을 원하므로 그 모든 중생을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를 전부 다 깨닫게 해서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라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보리심(菩提心)이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
-환공(桓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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