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한 아기가 중생이 되어가는 과정
사람들 누구나 처음 태어나서는 아무런 시비, 분별, 차별, 비교, 판단, 해석도 없었습니다. 갓난 아기
눈에 비친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가 하나일 뿐 서로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아기의 눈으로는 옳고
그른 시비(是와 非)도 없고, 아군과 적군의 구분도 있을 수 없으며, 진보와 보수라는 구별도 없고,
어리석은 사람과 성인의 분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애초에는 아빠와 엄마라는 분간도 없었
습니다. 도둑이 칼을 들이대더라도 웃을 수 있고, 독이 있는 뱀이나 호랑이를 만날지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천진난만한 어린 아기에게는 아무런 시비, 분별,
차별, 구분, 비교, 판단, 해석도 없는 겁니다.
어린 아기는 이 세상을 아무런 시비 분별 차별 구분 비교 판단 해석을 함이 없이 온전한 하나로
한 덩어리로 보는 겁니다. 어린 아기의 눈과 같은 바로 이런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사랑, 순수한
자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참된 사랑, 순수한 자비는 이 세상을 둘로 나누고 그 중 좋은 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쁜
분별 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아기는 아무런 시비 분별 차별 구분 구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함이 없이, 머릿속을 굴리는
계산 없이, 득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도 모르는 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100% 고스란히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참된 순수한 근본성품이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때야말로 내가 가장 나 자신으로써 드러나는 때입니다.
어린 아기와 같은 그때는 나를 남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괴로워하거나, 우월감에 사로잡혀 우쭐대지
않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아무런 계산 없이, 아상 없이, 분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던 어린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점점 성인이 되어가면서부터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사회로부터, TV외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상사는 방식을 제각각 배워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천진난만한 부처, 자기 자신의
근본성품, 본래성품대로 세상을 사는 방법 대신에 모든 것이 분별된 이 세상에서 필요로하는 방식대로
시비 분별 차별 구분 구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며 사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천진난만한 근본성품,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대신에 남들이 원하고, 세상이 바라는 길을 가도록 강요되고 있는 것이지요.
부모의 사랑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 잘 따르고 있을 때만 선택적으로
칭찬하고 사랑해 줍니다. 아이는 점점 더 자신에게 하느님과도 같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아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살아야만 함을 육감적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방식이 틀렸다고 느낄지라도 억지로 따르기 시작하는 거짓 삶을
배워갑니다.
부모는 아이가 흙 놀이를 하면 더럽다 하고, 찻길로 다니며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 하고, 모르는 낯선
아저씨를 만나면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부모는 이 세상을 위험하고 더럽고 두려운 것이라 믿고 있었고, 그 위험하고 더럽고 두려운 세상으로
부터 자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아이의 마음속에도 점차적으로
위험과 두려움에 대한 분별심이 연습되고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내 편과 네 편이 있고, 아군과 적군이 있으며,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위험한 사람과 선량한 사람이 있으며, 심지어 친구들조차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기 시작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둘로 나뉘고, 수많은 파편으로 조각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그 수많은 둘로 나뉜 것들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내편에 더 가까운지를 계산하고 따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저렇게 살면 안 되고, 나의 삶은 어떻게 펼쳐져야 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등 스스로를 제한하고 규정하는
수많은 자기 규칙과 자신의 특정한 삶의 방식, 가치관, 상(相) 등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런 아상(我相,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겨서 믿는 생각이나 마음)과 에고, 분별심으로 인한 갖가지
헛되고 허망한 생각, 망상(妄想)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온갖 제한 규칙과 망상에 스스로 빠져들어 갇혀버린 채 제한 규칙 망상 그것과
다른 삶이 펼쳐지게 되면 그 다른 삶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본래의 자기 자신이었던 천진난만한 부처, 근본성품이 어떻게 스스로 중생으로 변하게
되고, 온갖 헛되고 허망한 생각, 망상(妄想)으로 자기만의 허깨비 같은 세상을 만들어내며, 그 허깨비
같은 세상의 고통 속에 빠져드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과정입니다.
-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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