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祝隨想]나에게도 부처님이 오시려면
부처님오신 날이 다가옵니다. 대웅전 앞 철쭉은 활짝 피었고, 아카시아 향기도 경내를 온통 물들입니다. 아침 햇살은 눈부시고, 그 햇살을 받아 나무들은 저마다 초록의 개성 넘치는 옷을 갈아입으며 반짝거립니다. 도량 주위로는 우거진 숲이 감싸고 그 숲의 정원 너머로 도시의 마천루들이 마치 거대한 일주문인 양 서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은 매 순간 본래 이미 아무 문제없이 저절로 완전하게 그 자리에 있습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법계(法界)에서 소외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기대용이란 말 그대로 이 우주법계는 한생명의 무한기관인 대기(大機)로써 이 우주 삼라만상 전체를 한바탕의 무한히 큰 쓰임새(大用)로 돌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법당에서 이름 모를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미는 제 스스로 알아서 새끼를 낳고, 탯줄을 자르고, 태반을 먹어서 영양을 보충하고, 태어난 새끼를 혀로 핥아주고 젖을 물렸습니다. 처음으로 새끼를 낳은 것임에도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산부인과도 가지 않고, 저절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그렇고 그렇게 흐르고 있었지요.
고양이를 지켜보면서, 이것이 바로 이 우주법계의 자연스러운 무위(無爲)의 실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우주는 언제나 삼라만상 제각각 제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하게 있고, 제각각 제 갈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얼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눈이 녹고 땅 위로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납니다. 저절로 무궁무진한 꽃과 풀과 나무의 향연이 축제처럼 펼쳐집니다. 여름에는 우거진 숲이 저절로 피어나고, 가을이 되면 풍성한 열매를 수확합니다. 자연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숨과 날숨을 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은 이어집니다. 온몸에 따뜻한 피를 돌리려고 애쓰지 않는데도 저절로 혈액은 흐르지요. 36℃에서 37℃ 사이로 온몸의 온도를 완벽한 생명 시스템으로 유지시킵니다. 배고프면 저절로 밥을 찾고, 밥을 먹고 나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소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말하니 조물주나 그 어떤 절대자가 우주를 돌리는구나 생각하기 싶겠지만, 사실 바로 그 절대자, 조물주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한마음으로 한마음이 이 모든 것을 아무런 문제없이 완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깨달음, 문제없는 생생한 삶으로의 회귀 부처님오신 날, 휘황찬란한 행사가 아닌
生을 분별없이 받아들이고 살아나갈 때 자신의 마음에 비로소 부처님이 오신다
지공화상이 무위대도자연(無爲大道自然)이라고 노래했듯, 큰 도(大道, 무한한 도)는 이처럼 애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주어집니다. 내가 바로 대기(大機)이고, 내가 바로 대도(大道)이며, 내가 바로 우주(宇宙)이고, 내가 바로 부처(佛) 깨달음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로 입처개진(立處皆眞)이며, 촉목보리(觸目菩提)이고, 제법실상(諸法實相)입니다.
부처님이 오셨다고 불교계 안팎에서는 한껏 들뜬 표정입니다. 5월 12~13일 열린 연등축제에서는 환희의 축포가 터졌습니다. 그러나 진정 부처님오신 날은 바로 무위(無爲), 자연(自然), 불이중도(不二中道)라는 대도(大道)에 눈뜨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 이 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 왜 그토록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내 눈에 보이는 지금 여기 있는 이 세상은 왜 그토록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이 제법실상의 완전한 삶을 대상으로,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고, 이것은 내 마음에 들고 저것은 내 마음에 안 들고 하면서 끊임없이 시비 비교 판단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분별심 때문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이고 못 사는 것일까요? 무유정법(無有定法), 이 세상에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내 마음 내 생각이 결코 정해진 바가 없는 이 세상을 상대로 시비하고 비교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일 뿐이지요. 부유함와 가난함, 능력의 있고 없음, 성공과 실패, 탄생과 죽음, 오고 감, 등의 모든 분별된 관념들이 전부 내 생각 내 마음속에서만 있는 허망한 개념, 환상일 뿐입니다. 그런 분별 망상 환상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나아가 이 세상을 해석한 채, 분별 망상 환상 개념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연극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모든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만법유식(萬法唯識), 유식무경(唯識無境), 행복과 불행, 그것은 오로지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실체가 없는 분별 망상 환상 개념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통해 진실을 깨달으면, 삶은 곧장 아무 일 없는 제법실상(諸法實相)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여기 이대로의 삶을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곧장 완전한 평화와 행복에 도달합니다. 아니 본래 이미 완전하게 있던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증명해 보여 주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시고, 우리는 그 뜻을 따르기 위해 매년 잊지 않고 부처님오신 날을 기립니다. 그러나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우고, 부처님오신 날 행사를 그럴 듯하게 준비할지라도, 부처님오신 뜻,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자기에게는 돈 한 푼도 없으면서 밤낮으로 남의 돈만 헤아리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얼마 전 고등래퍼라는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했던 김하온이라는 친구가 ‘명상래퍼’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유명해졌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No Pain, No Gain 수고없이는 얻는게 없다’라는 말이 하나의 frame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고통 없이는 얻을 게 없다는 말이 너무 잔인하지 않니? 그래서 그 frame(개념, 분별, 망상, 환상)에서 벗어나려고 했어. 최대한 즐긴 것 같아.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또 이런 가사도 썼지요. “생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가. 왜 우린 우리 자체로 행복할 수 없는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인가? 원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울러 주는 답.”
큰 도(大道)는 자연스러워 애쓸 것이 없습니다(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수고 노력 고통 없이는 얻을 게 없다는 말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프레임, 분별, 망상, 환상, 개념일 뿐입니다. 이 프레임, 분별, 망상, 환상, 개념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된다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이 자체로써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실상은 부족할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의 분별을 하는 생각 마음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환상, 노력해야 한다는 환상, 둘이라는 환상을 만들었을 뿐, 깨달음, 즉 부처라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근본성품은 전혀 부족하지도 않고, 수고할 것도 없으며, 이 모든 삼라만상, 이 우주, 이 세계가 곧 하나의 진실한 진리의 세계, 일진법계(一眞法界)입니다.
깨달음(부처)란 바로 사람들이 제각각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분별 망상 개념 환상의 온갖 문제투성이인 삶을 살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아무런 문제없는 생생한 삶으로 돌아오는 지칭하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둘로 나누어 놓은 채,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 애쓰고, 남들보다 성공하려고 애쓰는 등의 온갖 유위(有爲)의 행을 그치고, 지금 여기 있는 이 세상 이대로 둘이 아닌 하나의 실상, 하나의 부처뿐임, 하나의 탈것(一乘)에 눈뜨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울러 주는 답’은 바로 ‘하나’입니다. 나와 남으로 둘로 셋으로 나눌 때 세상 온갖 문제가 만들어지지만, 둘 셋이 아닌 불이법(不二法), 불이중도(不二中道), 일불승(一佛乘), 공(空), 공성(空性), 연기공성(緣起性)
연기법(緣起法), 무분별심(無分別心)으로 돌아올 때, 더 이상 문제는 없습니다. 애쓸 것이 없어 애쓸 필요도 없고, 추구할 것이 없어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내버려 두어 보세요. 삶, 인생, 현실, 세상을 내 분별 망상 환상 개념 방식대로 판단 해석해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허용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Let it be! 입니다. 삶이 내 존재 위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세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세상이 진리(眞理)의 세계, 법계(法界)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나의 삶이 가장 완전한 진리가 피어난 세계입니다.
우리사람들이 할 일은 오로지, 바로 지금 여기 그 모든 것의 원천인 이 순간 이 자리에 그냥 그저 있는 것뿐입니다. 제각각으로써 피어난 한 분의 부처님의 삶을 그저 받아들여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함이 없이 무위로써 자연스럽게 살아 주는 것뿐 달리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곧바로 나에게도 부처님은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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