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無生)
[문] 언제나 희노애락(喜怒哀樂) 속에 파묻혀 사니 어떡하면 희노애락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답] 이 세상 모든 것, 만법(萬法), 법(法)과 법(法)이 그 자체로 성품이 없소. ‘나’라고 하는 법이나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법이나 본래 그 자체로 어떤 성품이 없소. 모든 법이 그 자체로 아무 성품도 없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법에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법이 달라붙을 수가 없는 것이오. 단지 느낌만으로 내개 희노애락이 달라붙는 것 같은 그런 거 같다고 느껴질 뿐인 거요. 안으로 ‘나’라고 하는 법도 없고 바깥으로 티끌만한 법도 하나도 없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기 안으로는 ‘나’가 분명히 있고 바깥으로도 온갖 법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굳게 믿고 그렇다고 보기 때문에 ‘나’와 바깥 경계 사이에 희노애락이라는 마찰이 늘 끊이질 않는 것이오. 그 마찰이 마땅할 때는 희(喜 즐거움)고 마땅치 않을 때는 노(怒 분노, 마땅치 않음)인 거요.
이러한 구조에 대해선 그동안 온갖 예를 들어가며 충분히 드러내 보이질 않았소? 언제까지 그 일을 계속 해야겠소? 지금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오. 항상 존재(存在)의 근본(根本, 텅~빈 바탕 지금 여기)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이요.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소. 이 세상 모든 것은 그저 ‘내’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거요. 이것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오. 그러니 아무 생각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는 거요.
지금 면전(面前)에 존재하는 것이 사람이 됐건 사물이 됐건, 혹은 심리현상이 됐건, 물리현상이 됐건, 실제로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착각해서 그런 것들을 상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한다는 것은 이미 한참 어리석고 미혹해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나’라고 하는 법을 세웠다는 뜻이오.
‘나’라고 하는 법을 세우면 그게 사람이 되었건 사물이 되었건 자동적으로 비판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좋고 싫은 분별을 하게 돼 있소. 그럼 영영 이 세상의 여여(如如)한 텅~빈 바탕을 깨달을 수가 없는 거요. 이 세상 모든 법, 즉 만법(萬法)이 성품이 없으면 우선 빛깔이 눈에 와 닿는 법이 없소. 법과 법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불상지 不相知), 법과 법이 서로 다다르지 못하오(불상도 不相到). 결국 중생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서로 옥신각신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것은 전부 환상 환영 같은 허깨비 짓이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생각만으로 짓는 신기루라는 말이요. 진실로 안과 밖으로 어떤 한 법도 일어난 적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이것을 일러 무생(無生 생겨남이 없음)이라 말하는 것이오
이 세상 모든 법(法, 현상, 것, 존재)은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소멸하는 것이오.이것을 인연법(因緣法)이라 하고 연기법(緣起法)이라고도 하오.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은 생겨났어도 생겨난 게 아닌 거요. 이것을 연생무생(緣生無生)이라고 해서 생겨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원인을 짓는 자도 없고 그 원인에 따른 결과(과보)를 받는 자도 없다는 소리요. 이것으로 할 말 다 한 거요.
[현정선원 법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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