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이미 지금 여기 도착해있다

장백산-1 2018. 8. 27. 20:59

이미 지금 여기 도착해있다 / 몽지님


“저에게도 그런 식으로 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갈매기 조나단은 또다른 미지의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몸을 떨었다.

“물론이지. 그대가 배우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당장 배우고 싶어요. 언제 시작할 수 있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네가 원한다면.”

“전 그렇게 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조나단이 말했다. 

그의 눈에서 전에 없던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치앙은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보다 젊은 갈매기 조나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생각처럼 빨리 날기 위해서는, 그곳이 어디든, 그대는 자신이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음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리차드 바크, <갈매기의 꿈> 중에서-



그대는 아니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도달하려 애쓰고 있습니까? 그곳이 


지고한 깨달음의 경지, 고요한 열반의 상태,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난 영원한 행복과 만족,,, 그러한 


경지, 그런 상태, 그런 수준,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이르지 


했습니까?



우리 다 함께 한 번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봅시다. 우리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아직 


우리가 희망하는 지고의 깨달음의 경지나 상태,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과 만족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면, 혹시 정말 어이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도달해야 할 어딘가를 


따로 상정한 그 분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환상 속의 유토피아 그곳을 만들어 낸 것입니까?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곳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곳이 어딘지 당연히 모릅니다. 우리는 그곳을 모르지만 언젠


가는 그곳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이 어딘지 알게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노력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달해야 할 어딘가인 그곳을 생각하고 상정하는 순간, 우리가 이미 있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어딘가인 그곳을


향한 우리의 그리움과 목마름은 그곳에 도달하지 못해서 그곳이 그립고 목말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곳을 우리와 분리되어 우리와 떨어져 있는 다른 곳으로 생각하고 상정해두었기 때문에


그곳에 도달하려고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지 모릅니다.



이 이야기를 곰곰이 사유해 보십시오.  당신이 부정해야 할 것은 어쩌면 당신이 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도달하려고 하는 허망하고 헛된 환상속 다른 그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언젠가 도달하겠다는 그곳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달하고자 하는 그곳이 사라지면 이미 당신이 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처음처럼 새롭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라는 개체적인 존재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라는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 자체


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영원히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언제나 영원히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그 자체입니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이미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당신이 존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현재도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다른 시공간에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텅~빈 바탕 영원한 지금 여기, 텅~빈 바탕 


순수한 존재 그 자체입니다.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現發) 즉 끝도 없고 갓도 없는 허공이 


곧 깨달음이고, 도(道)고, 부처이고, 하나님이고, 텅~빈 바탕 영원한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떠나 어딘가에 도달한다고 하는 생각은 어쩌면 순전히 착각


이거나 오해에 불과합니다. 어느 때 어디를 가든 당신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영원히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현존합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육체에 한정시켜 


이 우주와 이 세상과 분리되고 분별된 개체적인 존재로 여길 때만 시공간 상의 이동이 가능합니다.



이 점을 철저히 탐구해 보십시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아무런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인워적으로 노력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벗어나 환상 속 유토피아를 향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상실감, 허전함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미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린  탓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으로 있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헛된 기대와 


바람, 허망한 욕망과 욕구, 헛된 추구와 노력을 푹쉬고 이미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


로의 우리 존재를 허용하고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본래 이미 완전무결하게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도착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일러 옛 선사들이 행행본처 지지발처(行行本處 至至


發處 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고 도착하고 도착해봐도 떠난 그자리다), 역천겁이불고 선만세이장금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천겁이 지나도 옛날이 아니고 만세월을 돌고돌아도 영원히 지금 여기일


뿐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바로 지금 당장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한 발짝도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