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물을 씻지 못한다
법안문익(法眼文益) 선사에게 각(覺) 상좌(上座)가 찾아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걸어서 왔는가?” “배로 왔습니다.”
“배는 어디에 있는가?” “배는 강에 있습니다.”
각 상좌가 물러가자 법안 선사께서 곁에 있던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각 상좌가 제대로 안목을 갖추었느냐? 갖추지 못했느냐? 네가 말해보거라.”
선지식(善知識)의 물음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가’ 라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던지는 질문은 질문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의 공부 길을 묻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선지식(善知識)은 스님일 수도 있고 세속의 거사차림의 모습일 수도 있고 재가보살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본분자리, 근원자리, 근본성품에서 보면 지금 여기에 배로 왔던지 걸어서 왔던지 그게
무슨 대수이겠습니다. 지금 여기 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지식의 분별적인 질문마저도 어떻게 보면 묻는 자의 분별의식(분별심)일 뿐입니다. 그런데
분별적인 질문에 말려드는 납자는 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선지식이 분뵬적인 질문 그걸 모르고
분별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적인 질문인 방편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분별적인
질문인 방편이 방편인줄 모르고, 또 묻는 낙처(落處)를 제대로 모르면 선문답(禪問答)은 그야말로
우문우답이 되어버립니다.
선지식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우문은 현문이 됩니다. 또 우답은 현답이 됩니다.
우문우답을 현문현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수불세수(水不洗水)하고 금불역금(金不易金)이로다
물로 물을 씻지 못하고 금으로 금을 바꾸지 못한다.
불기 2551년(단기 4340년, 서기 2007년) 하안거 해제일에 / 법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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