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如如)함과 명상
삶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느껴보라. 세상의 이치가 여여함(如如, 온 듯 간 듯 그냥 그럴뿐임)을 느껴보라. 세상 이치가 여여할 뿐임을 느껴보는 이런 방식밖에 다른 길은 없다. 다른 길이 없는데 다른 길로 가려고 고집스럽게 왜 그렇게 저항하는 것인가? 여여함이란 저항하지 않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여여함은 지금 여기 말고 미래의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삶은 여여해서 풀은 초록으로 빛나고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바다의 파도는 잔잔하게 밀려오고 새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삶은 원래 여여함이기 때문에 그대는 그런 여여한 삶에 저항할 필요가 전혀 없이 있는 그대로일뿐인 여여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대 내면에서 문득 변화가 일어난다. 그동안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모두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대는 그 어떤 것에도 저항하고 반대하지 않게된다. 그대는 물질적인 현상, 정신적인 현상을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만물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받아들이며 행복해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첫번째로 가장 먼저 했어야 했던 일은 삶이라는 현상세계, 즉 존재계의 바다에서 마지못해 억지로 헤엄치기보다는 삶에서 그저 유유히 떠다니는 것이었다. 강물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떠내려갈 준비가 된 사람만 바다로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삶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으면 삶은 해탈의 세계로 사람들을 데려다준다.
두 번째로, 그대는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보다 죽음으로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이며, 삶이라는 존재계의 바다에서 일어날 일은 사람들의 노력이 없이도 일어나는 것이다. 바다로 흘러갈 준비, 즉 죽을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은 자신의 문을 열고 신성(神性)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서 자신의 문을 닫게 되면 해탈 열반이라는 행복의 바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명상이란 바로 ‘죽는 것’, 행복의 바다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체험했어야 했던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여여함(如如함)’이다. 장미의 꽃과 가시를 모두 받아들여야만 그대는 여여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평화는 여여한 삶을 ‘완전히 수용하는 마음인 무분별심(無分別心)’에서 얻어지는 열매이다. 마음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의 부재마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결과다.
눈을 감고 몸을 느슨하게 이완하라. 그리고 몸에 생명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보라.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것을 느껴보라. 계속 이렇게 몸 상태를 느껴보다 보면 그대는 그대가 몸의 주인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몸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느껴지는 것처럼 몸의 모든 세포와 신경이 편안하게 이완할 것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통나무처럼 몸을 그저 내버려두어라. 마치 마른 나뭇잎이 강물을 따라 떠내려 가듯 자신의 몸이 삶의 강물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게 자신을 맡겨보라.
이제 점차 호흡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호흡이 느려지면서 그대는 그대가 해체되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장작더미 위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제 그대는 완전히 소각되었다. 재마저도 남지 않았다. 이제 주시자(注視者)가 되어 새들의 노랫소리,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다와 파도 소리를 느껴보라. 그저 그냥 수용하고 자각하고 관찰하라. 몸은 편안하게 이완되고 호흡은 낮게 느려지고 그대는 여여(如如)함에 녹아든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을 관찰할 뿐이다.
그대는 점차 내면의 변화를 느낀다. 그리고 문득 내면이 고요해짐을 느낀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텅~비어지게 된다. 그것을 주시하고 체험하라. 떠다니는 그대의 몸을 강물이 데려갔다. 장작더미가 그대의 몸을 다 태워버렸다. 그대는 그 모든 과정을 주시하고 경험했다. 그런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사람들이 신성(神性)이라고 부르는 지복(至福)이 피어난다
이제 두세 번 천천히 호흡하라. 숨을 쉴 때마다 신선함과 고요함이 느껴지고 지복의 즐거움이 밀려올 것이다.
이제 천천히 눈을 뜨고 명상에서 빠져나와라.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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