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이거''이것'은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장백산-1 2018. 11. 19. 23:12

'이것'은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것'은 특정한 어떤 현상, 대상,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곧바로 가리킬 때는 '이것'을


무언가를 대상화해서 그 대상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말은 바로 '이것', '지금 이 순간 이것' 등 특정한 대상 무언가


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본성(本性, 근본성품)을 가리키는 말 '이것'은 어떤 특정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


다. 탁자를 두드리거나, 손을 들어 보이거나, 말로 표현하면서 가리키려고 하는 '이것'은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만


물, 모든 대상들을 말없이 언제나 드러내보이고 있는 바탕입니다. 



그런데 '이것' 본성을 가리키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말과 행동이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 같아 자기도 모


게 분별심, 분별을 하는 생각을 일으켜서 '이것'을 잡으려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것'에 접근하면 말하는 사람의 의


도와는 정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마지못해서 어거지로 '이것'입니다, '저것'입니라 라는 말을 하는 것입


니다.



말은 특정한 대상이 있어야 그 말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사과라는 대상이 있어야 '사과'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사과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며, 하늘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하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하늘이라는 말을 핳 수 있는 것


니다. 말(언어)는 그 말이 의미하는 특정한 대상이 있어야 그 말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우고부터 늘 말이 의미하는 특정한 대상을 아는 방식 이런 식으로 세상을 분별(分別)하고 이해하고 알아왔습니다.



어떤 말을 들으면 그 말에 해당하는 특정한 경계를 떠올리면서 세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렇


게 해석된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여깁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접근은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


서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매우 쓸모가 있는 접근방식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깊고 세밀한 부분까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


게 해줍니다.



그러나 세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이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  본성인 


상 분별의 바탕을 체험할 때는 세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이런 식의 접근이 큰 방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상 분별의 이 바탕 '이것'은 분별되고 구분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 본바탕, 본성, 근본성품, 깨달음, 참


나, 부처, 하느님을 사람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습관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 '이것'이 가리키는 특정한 대상을 찾아 헤매입니다.


탁자를 두드리면 저 행동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별을 하는 생각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탁자를 두드리는 행동이 진실


로 가리키고자 하는 목표는 모든 생각이 일어나는 바탕이고, 소리와 사물이 모습으로 드러나 분별되기 이전 자리입니


다. '이것'은 사과나 특정한 소리처럼 분별하여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분별을 하는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게 될 때 


자각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별을 하는 생각을 일으켜 '이것'을 찾기 이전에 생각 이전에 항상 영원히 있을 뿐입니


다.



세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이해하고 알려는 습관이 멈춰질 때 '이것', 이 바탕이 저절로 자각되는 것입니다.


'이것'이라는 본성을 가리키는 특별한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이 '이것'을 가리키고 있고, '이것'을 가리키는 특


별한 행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이 '이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바로 지금 여기 이것에 해당하


는 특별한 말이나 특별한 행동이나 특정된 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공부가 되고 저렇게 하면 마음공부가 안되는 일도 없습니다. 어떠한 생각도 모두 분별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이미 '이것'과는 어긋나지만,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생각은 '이것', 이 바탕을 벗


어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바탕인 '이것', 이 바탕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이 세상 모든 일이 '이것' 하나의 일


이라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이것', 이 바탕을 떠난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모든 분별되어 드러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고, 허망한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는 자각이 열립니


다. 나와 세상 모든 사람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비롯한 모든 분별상(분별되어 보이는 듯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허


깨비와 같이 그림자 같이 실체가 없어 텅~비었지만, 이 텅~빔 자체 그대로 진실한 법(法, 부처, 도, 깨달음)의 세계라


는 것이 자각됩니다. 분별되어 드러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이것' 하나뿐이라는 자각이 올 때 이 세상이 있는 그


대로 텅~비었다는 체현이 삶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체가 없어 텅~빈 것이라


는 자각은 사람들을 허망함이나 허무감에 빠지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 텅~빈 진실 하나로 깨어있음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무한한 자유를 가져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니, 진리니, 진실이니, 법이니, 깨달음이니, 바탕이


니, 부처니, 참나니, 근본성품이니, 도(道)니 하는 말도 다 사람들을 꿈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표현하


는 방편상의 말일 뿐이지 그런 말에 해당하는 특정한 대상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깨달음의 말도 남아


있지 않고, 깨달은 사람의 특별한 행동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 그때 장소에 따라, 사람의 근기에 따라 필요


에 따라 머묾 없이 말을 하고 머묾 없이 행동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눈뜸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