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세종류의 바보

장백산-1 2018. 11. 25. 02:37

세종류의 바보


바보들의 유형을 설명해주겠다.


첫 번째 바보는 이렇다. 우선 이 바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보다. 그는 그냥 바보다.


두 번째 바보는 이렇다. 이 바보는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하는 바보다. 이 바보는 배운 건 많아서 복잡하게 살아가는 바보다.


세 번째 바보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바보다. 이 바보는 축복받은 바보다.


모든 사람은 첫 번째 바보의 유형으로 태어난다. 이 유형의 바보가 바로 ‘숙맥 같은 사람이다’라는 의미다. 갓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는 그냥 바보다. 갓난아기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조차도 모른다. 갓난아기는 아직 ‘앎’의 가능성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의 우화다.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말했다.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아담과 이브가 지혜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아담과 이브는 그냥 숙맥 같은 인간이었다. 갓난아기나 어린애 같은 인간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행복하게 살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오히려 불행해지기가 어렵다. 불행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불행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간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분별하는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 지식도 없이 행복한 세계, 불행한 세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행복한 세계인 천당과 불행한 세계인 지옥이라는 분별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담과 이브는 갓난아기나 어린애들처럼 살았다. 갓난아기들이 태어날 때마다 아담이 다시 태어난다. 아담은 아이 안에서 기껏해야 4년 정도를 산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매일 줄어든다. 아담은 불행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담은 삶을 신뢰한다. 그래서 해변에 있는 조약돌이나 조개껍질 같은 소소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는 마치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것들을 수집한다. 평범한 색깔의 돌들이 마치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나 보석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아담이라는 어린아이의 관심을 끈다. 아침에 맺힌 이슬, 밤하늘의 별, 달, 꽃, 나비 등 정말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한테는 신비롭고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나비는 그저 나비일 뿐이고, 꽃은 그냥 꽃일 뿐이다 라는 사실을. 특별 난 게 없다는 사실을. 어린아이는 사물들의 이름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건 장미, 이건 데이지, 그건 튤립,이건 연꽃..등등. 점차 배우고 익힌 이름들이 어린아이에게 장벽이 되어간다. 더 많이 알아갈수록 삶으로부터 더욱 단절되어간다. 아이는 고집쟁이가 되어간다. 이제 그는 자신의 전체성(全切性)이 아니라 사량분별에 익숙한 머리로만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추락’의 뜻이다. 어린아이는 지혜의 나무에서 분별심(分別心)이라는 열매를 따 먹은 것이다.


사실 어린아이들은 지혜의 나무에서 분별심이라는 열매를 따 먹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들 모두가 아주 단순해서 세상 모든 것을 분별을 해서 복잡해져야만 이 세상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장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은 첫 번째 유형의 바보인 아무것도 모르는 단순한 바보에서 복잡한 유형의 두 번째 바보로 변해간다. ‘복잡한 바보에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어떤 아이는 중학교만 마치고, 어떤 아니는 고등학교만 마치고, 어떤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또 어떤 아이는 석사 박사 코스의 대학원을 마친다. 참으로 다양한 수준의 복잡한 바보가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지식의 맛을 보고자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알고자 하는 유혹이 대단히 강렬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는 것은 살아가는데 위험할 수도 있다. 지식을 알아야만 한다. 인간은 지식이 있어야 알고자 하는 유혹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는데 알고자 하는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아이들은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첫 번째 유형의 바보는 필요성에 의해서 두 번째 바보의 유형으로 변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바보가 세 번째 유형의 바보로 바뀌는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필연성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형의 바보가 자신의 지식이 엄청 무거운 짐이 될 때에야 비로소 세 번째 유형의 바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의 바보는 극단적일 정도로 무거운 짊인 너무 많은 지식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는 많은 지식으로 머리로만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감수성, 모든 의식, 모든 생생한 삶을 잃어버렸다. 그의 머리는 이론, 경전, 교리등 지식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마음속에서 온갖 생각들 말들이 늘 먼지바람처럼 소용돌이쳐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유형의 바보는 모든 이론, 경전, 교리 등 모든 지식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된다. 그때 그는 세 번째 유형의 바보, 축복받은 바보로 변화된다. 그는 새롭게 다시 탄생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아무 분별심도 없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오쇼의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