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 개의 포대가 있다 - 포대화상 / 릴라님
나에게 포대 하나가 있으나 (아유일포대 我有一包袋)
그 포대는 텅 비어 걸림이 없어라. (허공무가애 虛空無罣碍)
펼치면 온 우주를 두루 덮고 (전개변시방 展開遍十方)
접을 때도 자유자재함을 보도다. (입시관자재 入時觀自在)
-포대화상(미상~917년 추정)
포대화상은 후량(後梁)시대의 선승으로 절강성 봉화현 사람입니다. 뚱뚱한 몸집에 배가 나왔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지팡이 끝에 커다란 포대를 걸어 어깨에 메고 다녔기에 그를 포대화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포대 속에는 마을 아이들에게 줄 장난감이며 과자, 엿 등 보시 받은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포대화상의 주머니에 있는 선물들을 받고 싶어 모여들기도 하고, 그의 해괴한 행색을 놀리며 막대기로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포대화상은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넘기거나 실랑이를 하며 장난을 쳤습니다. 그는 승려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못한 차림새였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간혹 그는 개의 뼈다귀를 담고 다녔는데, 그가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하면, 마을 사람들은 이를 조롱했습니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줘도 가져가지 않을 개 뼈다귀를 팔고 다녔으니, 사람들은 그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포대화상의 이런 행위는 사람들의 분별심(分別心)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方便)이었을 것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 진의를 알아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포대화상은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었으며, 땅바닥을 요 삼고, 구름을 이불 삼아 언제 어디서든지 드러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았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포대화상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습니다. 천재지변을 앞두고 뭇 짐승들이 먼저 천재지변의 징조를 알아 천재지변을 대피하는 것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포대화상이 나막신을 신고 다니면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또 장마철에 비가 내릴 때 그가 짚신을 신고 다니면 날이 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하나였기에 스스로 자연이 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의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신통함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이 포대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우리들은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하는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禪)에 통달하셨다면 저희들에게 선(禪)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십시오."
이같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禪)의 진수(眞髓)다!"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포대화상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선(禪) 전부(全部)다. 내가 포대를 땅에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포대를 내려놓아라."
그러자 다시 사람들이 포대화상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포대를 내려놓은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포대화상은 아무 말 없이 땅에 팽개쳐놓았던 포대를 후딱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다음 일이다. 그러나 나는 포대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포대가 나의 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포대에 들어있는 짐들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누구나에게 한 개의 포대가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포대 하나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이 한 개의 포대로 인해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것이고, 나의 모든 경험과 삶, 나를 포함한 이 세계, 우주삼라만상만물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개의 포대에는 담을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이는 사물의 모양, 들리는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 아는 것 등 경험하는 모든 것이 이 한 개의 포대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무언가를 꺼내 주더라도 이 한 개의 포대 여기에서 꺼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고 싶은 것, 남이 달라고 하는 것, 인연이 꺼내어 주기를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이 한 개의 포대 여기에서 나와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포대화상은 사람들이 그에게 주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한 개의 포대 여기에 담았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닌다는 뜻은 사람들의 인생 곳곳에서 만게 되는 인연들을 말하는 겁니다.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들을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또, 이 받아들인 것을 인연대로 내어줍니다. 아이들이 요구하든, 어른들이 요구하든 아낌없이 꺼내어줍니다. 오는 인연 거절하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습니다.
한 개의 포대를 펼치면 온 세계가 모두 한 개의 포대이지만, 이 세계 모든 인연이 때에 따라 일어나고 모이고 헤어짐에 걸림이 없습니다. 모두가 한 개 포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의 포대를 펼치면 끝이 없고, 포대 안을 들여다보면 모든 인연 따라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남겨둘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고, 회피할 것도 없습니다. 물이 인연 따라 흘러가듯, 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가듯 아무 걸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선(禪)의 진수(眞髓)를 보여달라 하니, 포대를 땅바닥에 쿵 내려놓고,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포대를 후딱 걸머지고 발을 내딛습니다. 깨달음은 한 개의 포대에 들어있는 모든 짐을 꺼내버려서 포대가 텅~비워지는 것이고, 텅~비워진 포대를 텅~빈 마음으로 인연 따라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텅~비워진 한 개의 포대, 텅~비워진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온갖 짐을 지고 가더라도 본래 무게가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예전과 다름없이 한 개의 포대 속에 있는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지만 그 포대는 텅~빈 포대입니다. 이전과 다름없이 사람의 도리를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나를 돌보고 남을 돌보지만 한 개의 텅~빈 포대 여기에는 도리도 없고, 생계도 없으며, 일도 없고, 돌보는 일도 없습니다. 돌볼 나와 남도 허깨비 같은 껍데기 허울뿐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노는 장난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이 일이 아니라 소꼽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소꼽장난' 이것이 선의 진수이고, 선과 내가 합일(合一)된 삶입니다.
이 한 개의 포대는 사람들 누구나,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이 갖추고 있습니다. 물이 샐 틈도 없이 이 세상 모든 것과 텅~빈 한 개의 포대는 한 몸으로 완전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감촉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아는 거가 텅~빈 한 개의 포대 이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은 다 다른 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의 본래성품은 똑같은 텅~빈 한 개의 포대입니다. 텅~빈 한 개의 포대 여기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분별 차별 구분 구별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이해득실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내려놓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에 속지만 않는다면 당장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앞에 있는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진면목(眞面目)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거불래(不去不來)인 진리(眞理), 도(道), 깨달음(覺), 부처(佛), 선(禪), 법(法), 마음(心입니다.
미륵, 참 미륵이여! (미륵진미륵 彌勒眞彌勒)
천백억 분신으로 나타나서 (분신천백억 分身千百億)
계속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만 (시시시시인 時時示市人)
세상 사람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네. (시인자불식 市人自不識)
포대화상은 이 게송을 마지막으로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게송을 듣고 그가 미륵불의 화신(분신)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 미륵은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머리를 들어 눈앞을 보십시오.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앞에 컵으로, 손으로, 책으로, 꽃으로, 하늘과 땅, 셀 수 없는 천백억 화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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