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분별 망상 번뇌가 곧 깨달음(보리)이다

장백산-1 2019. 2. 5. 02:49

분별 망상 번뇌가 곧 깨달음(보리)이다


과거 경험을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의 바탕 위에서 생각하고 상상을 할 수 있기 시작한 호모사피엔스에게 그 기억력과 상상력 때문에 미래는 영원한 꿈이 되고 말았다. 지구상의 무수한 생물종 중에 과거의 경험을 뚜렷이 기억을 하고, 오지도 미래에 온통 정신을 상상하는 데 빼앗기며 살아가는 종족은 아마 인류라는 종족밖에 없을 것이다. 진화는 기억력이라는 달콤한 기능을 인류에게 선물하면서 상상력이라는 기능을 첨부해 사람들을 분별 망상 번뇌의 세계 속에 던져버렸다. 인류에게 주어진 기억력과 상상하는 기능은 사람들을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상주(常住)하지 못하게 방해해서 죽을 때까지 정신 없이 방황하게 만들었다. 이로서 인간은 업(業 : 생각, 말, 행동)의 굴레를 인식하게 되었고, 또한 미래, 희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내일이라는 환상(幻想)을 위해 모든 고통을 기꺼이 참아내기 시작했다.


인간에게서 기억하는 능력과 상상하는 능력을 뺏어버리면 인간이 기대하는 미래, 꿈도 사라져버린다. 사실 인간의 인식의 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구조 속에서 펼쳐지는 환영(幻影)의 세계이다. 그래서 모든 선각자들은 말 하기를 온전한 행복은 오직 ‘now & here’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 혹자들은 이 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자신이 있는 곳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삶의 가치관으로 대치하여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것도 나쁠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는 현실세계에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니라 의식의 구조에서 찾아야 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인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공간적 시간적으로 다른 곳 다른 때와 비교하지 않는 마음상태로 마음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산다는 것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온전한 행복이다.


지난해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이사를 와서 시작한 신제주불교대학에서 1기생들 151명이 졸업했다. 처음에 시작할 때 제주시 불교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며 만류하며 걱정해 주시던 분들이 많았다. 제주시에서 비록 사찰도 없이 제주시 도심에 건물을 임대해 신제주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무모해 보일지라도 제주불교의 현실을 직시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꿈 같이 물 흘러가는 것 같이 흘러갔고 2019년 1월19일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을 앞두고 결산을 해보니 많은 분들의 우려가 신제주불교대학 운영 현실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운영비, 강사료, 임대료를 지출하고 나니 재정이 딱 맞아 떨어졌다. 사실 신제주불교대학 강의를 가장 많이 한 나 스스로의 강사료는 한 푼도 계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재정 상태가 제로 베이스이다 보니 걱정해주신 여러분들의 우려가 맞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출가한 이후 굶지만 않고 방에 사람들이 차서 고통받지만 않는다면 세상의 손익에 관심두지 않고 살기로 했으니 스스로 매우 만족한다. 그래도 빚을 지지 않은 채 신제주불교대학 151명의 불자 분들에게 수계를 하였고 올바른 교육을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가 싶다.


게다가 지난 2018년 9월에 창단한 보리수 어린이합창단이 토요일이면 법당 가득 모여 신이 나서 찬불가를 부르고 있으니 매우 행복하다. 지난 해 2018년 10월 보리수 어린이합창단 운영을 위해 밀감을 팔아 자금을 모으지 않았다면 힘이 많이 들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법의 의지를 굳게 갖고 하다 보면 모든 일이 뜻에 따라 풀려 나아가는 것 같다.


법당 하나뿐인 보리왓에서 불교를 배워 졸업한 신제주불교대학 동문들이 각자가 다니던 사찰로 돌아가 가정과 사회, 국가에 보다 헌신하며 제주도를 불국정토로 만드는 초석이 되기를 축원한다.


이제 겨우 신제주불교대학 1기를 마치고 나니 벌써 2기 신입생 모집 문제로 또다시 신종인류 호모사피엔스의 조그만 두뇌는 분별 망상 번뇌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것 같다. 


분별 망상 번뇌가 곧 깨달음(보리)이라는 선대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오늘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보내고 싶다.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75호 / 2019년 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