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나에게도 부처님이 오시게 하려면

장백산-1 2019. 3. 16. 22:53

나에게도 부처님이 오시게 하려면


부처님오신 날이 다가옵니다. 대웅전 앞 철쭉은 활짝 피었고, 아카시아 향기도 경내를 온통 물들입니다. 아침 햇살은 눈부시고, 그 햇살을 받아 나무들은 저마다 초록의 개성 넘치는 옷을 갈아입으며 반짝거립니다. 도량 주위로는 우거진 숲이 감싸고 그 숲의 정원 너머로 도시의 마천루들이 마치 거대한 일주문 처럼 서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눈앞 지금 여기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도 없이 저절로 완전하게 눈앞 그 자리에 있습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법계(法界)에서 소외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대기대용이란 말 그대로 이 우주법계는 한생명의 무한기관인 대기로써 우주 삼라만상만물 전체를 한바탕의 큰 쓰임으로 돌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법당에서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미는 제 스스로 알아서 새끼를 낳고, 스스로 알아서 탯줄을 자르고, 스스로 알아서 태반을 먹어서 영양을 보충하고, 태어난 새끼를 혀로 핥아주고 젖을 물립니다. 처음으로 새끼를 낳은 것임에도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산부인과도 가지 않고, 스스로 저절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길고양이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바로 우주법계의 자연(自然)스러운 무위(無爲)의 실상(實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주라는 법계는 언제나 모든 것들이 제각각 있어야 할 곳에 정확하게 있고, 제각각의 갈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눈이 녹고 땅 위로 식물들이 솟아나와 꽃들을 앞 다투어 피워냅니다. 저절로 무궁무진한 꽃과 풀과 나무의 향연이 축제처럼 펼쳐집니다. 여름에는 우거진 숲이 저절로 피어나고, 가을이 되면 저절로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연(自然)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숨과 날숨을 애를 써서 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은 쉬어집니다. 온몸에 따뜻한 피를 돌리려고 애쓰지 않는데도 저절로 피는 온몸을 흐르지요. 36℃에서 37℃ 사이로 몸의 온도를 완벽한 생명 시스템으로 유지시킵니다. 저절로 배고프면 밥을 찾아 먹고, 먹고 나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소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말하니 조물주나 창조주나 그 어떤 절대자가 우주를 돌리는구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싶지만, 사실 절대자, 창조주, 조물주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한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아무런 문제없이 완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공화상이 무위대도자연(無爲大道自然)이라고 노래했듯, 무한한 道는 이처럼 애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주어집니다. 내가 바로 대도(大道)이고, 내가 바로 우주(宇宙)이고, 내가 바로 부처, 즉 깨달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입처개진(立處皆眞)이며, 촉목보리(觸目菩提)이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는 방편상의 말이 가리키는 것이 그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오신 날이라고 불교계 안팎에서는 한껏 들뜬 분위기입니다. 5월 12~13일 열린 연등축제에서는 환희의 축포가 터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오신 참된 날은 바로 무위(無爲), 자연(自然), 불이중도(不二中道)라는 대도(大道)에 눈뜨는 일입니다. 이 눈 뜨는 일이 깨달음이라는 방편상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처럼 이 세상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 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 왜 그토록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왜 그토록 문제투성이인 세상처럼 보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제법실상의 완전한 세상을 대상으로,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이것은 내 마음에 들고 저것은 마음에 안 들고 를 분별하면서 끊임없이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사람들의 분별심 때문에 괴롭고 문제투성인 세상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이고 무엇이 못 사는 걸까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이 세상에는 미리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상대로 시비하고 분별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해석해서 인식하는 것일 뿐이지요. 부자와 가난뱅이, 능력 있고 없음, 성공과 실패 등의 모든 분별된 관념들이 전부 내 생각 속에만 있는 허망한 개념, 이미지, 상(相)일 뿐입니다. 그런 분별망상으로 사람들은 삶을, 나아가 이 세상을 해석한 채, 그 해석과 인식 속에서 울고 웃을 뿐이지요. 모든 원인은 바로 나 자신의 인식, 의식, 마음, 알음알이(識)에 있습니다. 만법유식(萬法唯識), 유식무경(唯識無境)라는 말처럼 행복과 불행은 오로지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해서 진실, 실재, 진짜를 깨닫게 되면, 이 세상, 삶은 곧장 아무 일 없는 제법실상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세상, 삶을 단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곧장 완전한 평화와 행복에 도달합니다. 아니 이미 있던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것을 증명해 보여 주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매년 잊지 않고 부처님오신날을 기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수많은 경전을 많이 외우고,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그럴 듯하게 준비할지라도,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내게는 돈이 한 푼도 없으면서 밤낮으로 남의 돈만 세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얼마 전 고등래퍼라는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했던 김하온이라는 래퍼가 ‘명상래퍼’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유명해졌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하나의 frame이란 걸 깨달은 거지. 고통 없이는 얻을 게 없다는 말이 너무 잔인하지 않니? 그래서 그 frame에서 벗어나려고 했어. 최대한 즐긴 것 같아. 웃으면서 즐기면서 긍정적으로.” 그는 또 이런 가사도 썼지요. “생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가. 왜 우린 우리 자체로 행복할 수 없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인가? 이 모든 물음을 하나로 아울러 주는 답을 원해.”


무한한 도(道), 무시무종으로 불생불멸로 영원히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지 않은 곳이 없고 있지 않은 때가 없는 도(道)는 자연스러워 애쓸 것이 없습니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은 사람들을 가두는 하나의 프레임일 뿐입니다. 분별에서 벗어난다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자체로써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실상은 부족할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단지 사람들이 생각으로 지금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환상,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환상, 둘이라는 환상을 만들었을 뿐, 우리의 자성(自性)은 전혀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노력할 것도 없으며, 이 모든 삼라만상만물의 세계가 곧 하나의 진실한 세계, 일진법계(一眞法界)입니다.


깨달음이란 바로 사람들이 생각으로 자기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幻想)인 괴롭고 온갖 문제투성이인 삶을 살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 아무 문제가 없는 생생한 삶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모든 것을 둘로 나누어 놓은 채,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려 애쓰고, 남들보다 성공하려고 애쓰는 등의 온갖 유위(有爲)의 노력을 버리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세상, 삶이 둘이 아닌 하나의 실상, 하나의 대도(大道)일 뿐임에 눈뜨는 것이 깨달음, 성불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울러 주는 답’은 바로 그 ‘하나’의 실상, 하나의 대도입니다. 나와 남으로 둘로 셋으로 나누고 분별할 때 온갖 괴로움과 문제가 만들어지지만, 둘이 아닌 불이중도(不二中道)의 자리로 돌아올 때 더 이상 괴로움도 문제도 없습니다. 애쓸 것도 없고, 추구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을 삶을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둬 보세요. 내 생각대로 해석하거나, 취하고 버리지 말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허용해 주면 됩니다. Let it be! 하면 됩니다. 세상이 삶이 내 존재 위를 자유롭게 흘러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면 됩. 눈앞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진리, 진실, 실재, 진짜, 도, 부처, 깨달음입니다. 지금 여기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나의 삶, 이 세상이 진리의 가장 완전한 피어남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그 모든 것의 원천인 텅~빈 바탕자리 이 자리, 진리, 진실, 실재, 진짜, 道, 부처, 깨달음의 자리에 그냥 그저 있으면 될 뿐입니다. 나라는 개체로 피어난 삶, 한 분의 부처님의 삶을 그저 받아들여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 주는 것뿐입니다. 바로 그때 내게 부처가 와 계십니다.


- 법상 스님/ 국방부 원광사 주지, 다음 카페 ·목탁소리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