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섭의 ‘나한-영월 창령사 오백나한상’
우리나라 토속불교 ‧ 민간신앙에 나한이 소원 들어준 신앙 성행
학교의 졸업장도 필요가 없고
용을 썼던 성적표도 필요가 없네
어떻게 살아야 저 표정이 나올까
무엇을 알아야 저 웃음 나올까
기쁨도 노함도 뛰어넘고서
슬픔도 즐거움도 뛰어넘고서
좀 배웠단 먹물 빼고 또 빼어버린
좀 안다는 우쭐 놓고 또 내려놓은
아, 비울 것 다 비워낸 사내가 있다
저 닦을 것 다 닦아낸 사내가 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이다. 아라한은 속세를 떠나(出離), 욕망을 떨쳐버리고(離欲) 괴로움에서 벗어난(離苦) 소승불교시대의 수행자가 성취한 최고위 성자이다.
삼학(三學: 계율·선정·지혜)의 수행에 의해서 욕망의 불과 분노의 불, 어리석음의 불(三毒心)이 완전히 꺼지면 번뇌의 고통이 사라진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른다. 여기에 이른 수행의 완성자를 아라한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토속불교, 민간신앙에서는 나한이 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한신앙이 널리 성행하였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16나한, 500나한이 신앙의 대상이다.
태조 이성계가 석왕사에서 무학(無學)대사에게 왕이 되는 꿈을 해몽(解夢)받고, 3년 동안 금강산에서 돌을 져다가 500나한상을 조성한 불사를 하여 조선왕조를 창업한 일화는 유명하다.
고영섭 시인(1963~현재)의 ‘나한’은 지난 4월19일부터 6월1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강원도 영월군 창령사 터에서 발견된 500나한상 전시회를 보고 감동한 마음을 시로 읊은 것이다.
시인이 나한을 “아, 비울 것 다 비워낸 사내가 있다/ 저 닦을 것 다 닦아낸 사내가 있다”고 표현했듯이 아라한은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고 배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무학(無學)’이라고 하며, ‘마땅히 대중으로부터 공양을 받을만한 분’이란 뜻으로 ‘응공(應供)’이라고 번역한다.
석학이라면 젊은 날에야 밤을 새워서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하겠지만 늙어서까지 눈도 잘 안보이고 몸도 시원치 않는데 더 볼 공부가 있다면 덜 떨어진 학자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책 자랑하고 명문출신을 자랑하고 있으면 중류이다.
깨달은 아라한이라면 시인의 말대로 “기쁨도 노함도 뛰어넘고서/ 슬픔도 즐거움도 뛰어넘고서”의 경지라야 한다. 헌금, 불사라는 명분으로 말년까지 돈 걱정하고, 우파좌파 한쪽 편에 서서 권력에 아첨하는 종교지도자, 수행자가 있다면 중생 구제는커녕 자신도 구제받지 못한다.
나한상은 시골 촌부의 꾸밈이 없는 모습이다. 최고의 미학은 인위적인 꾸밈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무위(無爲)의 멋이다. 수행도, 학문도, 세상을 사는 것도 억지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최상의 품격이다. 고영섭 시인은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을 통섭한 학자로 ‘나한’은 어쩌면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며 쓴 시이다. 두 개의 불교학회와 연구소를 직접 이끌어가며, 수십 권의 저서를 낸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이다. 문단에도 등단하여 시인, 평론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몸이라는 화두’ ‘사랑의 지도’ 외 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특히 우리 전통문학의 뿌리인 ‘향가시회’를 주도하여 향가를 읽고 현대향가의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향가체 시집 ‘노래중의노래(현대향가 1집)’를 발간하였다.
시인은 불교학자로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국유사 알기모임’ ‘원효학당’의 모임을 통해 전공한 학문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며, 불교 선시에도 애정을 가지고 법고창신하는 실천자이다.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개척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불교시의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선지식이다.
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ililsihoil1026@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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