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이 세상 모든 것은 분별심이 만든 허깨비다

장백산-1 2019. 12. 18. 18:39

날마다 해피엔딩   -  -  법상스님, 목탁소리


이 세상 모든 것은 분별심이 만든 허깨비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른 것들과의 비교 분별을 통해서만 그 개체로 그렇게 인식(認識)되었을 뿐,

그 인식(認識) 자체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비교를 하고 분별(分別)을 하고 취사선택(取捨選擇)을 하면서도 그같은 분별심과 취사

간택심에 과도하게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 쓰는 것이다. 이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분별심, 분별의식, 취사간택심을 필요할 때 내어쓰면서 

살되, 분별심, 분별의식, 취사간택심 그것이 진짜라고 속아넘어가지 않고, 실체라고 여기지 않아, 

필요할 때 꺼내쓰기는 하지만, 분별심, 분별의식, 취사간택심 거기에 얽매여 구속당하지 않는 것이다. 


좋은 것은 더 갖기 위해 애쓰기는 할지언정, 못 가지더라도 크게 괴로워하지 않는다. 싫은 것은 더 

이상 안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보기싫은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저 함께 살 수도 있다. 왜냐하면 

6가지 감각기관(感覺器管)인 눈, 귀, 코, 혀, 몸, 생각과 이것들의 대상인 육경(六境 :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모든 생각의 대상)이 서로 접촉할 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육식(六識 :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종합적인 의식이라는 분별심)이 그냥 인연 따라 생겨났다 사라버리는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인 줄 아는 까닭이다. 이런 분별심, 분별의식, 취사간택심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육식의 이런 특성을 안다면,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이 

그저 비교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통해 그렇게 인식된 것일 뿐이지 정말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깨닫게 될 때 내가 아는 것은 없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이를 숭산 큰스님

께서는 ‘오직 모를 뿐’이야말로 삶의 진실이니 ‘오직 모를 뿐’이라는 이 화두를 타파하라고 설파하셨다.

육식은 ‘안다’는 분별심인데, 진실은 ‘모를 뿐’이다. ‘모를 뿐’이라는 화두는 안다는 허망한 착각인 육식에 

끌려가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는 수행법이다. 모를 뿐이니, 대상을 분별하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상을 좋은 것 나뿐 것이라고 분별하면서 취사간택하는 대신, 무엇이 일어나든,

어떤 것이 오든 그것을 그저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이고, 지와 관(止觀) 수행이며, 사념처(四念處)라는 불교 명상 수행이다.


육식이라는 거짓된 분별의식에 휘둘리지 않고자 한다면, 현실이라는 모든 경계 모든 대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든 대상을 허용해 주라. 받아들여 주라.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 이것이 곧 육입처, 육식, 십이처, 십팔계라는 허망한 분별의식, 분별심, 

취사간택심에 집착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