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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도(道)는 언제나 바로 당장 눈앞에 있다

장백산-1 2020. 2. 14. 10:10

무한한 도(道)는 언제나 바로 당장 눈앞에 있다.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대승찬' 첫 구절에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말은 끝이 없는 무한한 

도(道)는 언제나 바로 당장 사람들 눈앞, 텅~빈 바탕,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무한한 도(道), 끝이 없는 큰 도(道)는 항상 바로 당장 눈앞에 있습니다. 목전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도(道), 법(法), 진리(眞理), 깨달음(覺), 부처(佛), 마음(心), 열반(涅槃), 해탈(解脫), 견성(見性), 

자성(自性 : 자체의 성품), 불성(佛性 : 부처의 성품), 본성(本性 : 근본성품) 등 다양한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 즉 목전(目前), 눈앞, 텅~빈 바탕,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이것', 즉 목전(目前), 눈앞, 텅~빈 바탕,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나와 분리되고 떨어

져서 나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가르치는 가르침(불법, 佛法)은 불이의 가르침(不二法), 불이중도의 가르침(不二

中道法)입니다. 즉,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서로 분리되어 따로 따로 나뉘어져 

떨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무한한 도(道)가 어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무한한 도(道), 

끝이 없는 법(法)을 목전, 눈앞, 텅~빈 바탕,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찾아

나설 수 있겠습니까? 


찾고 있는 '이것'이 바로 찾는 '그것'입니다. 찾고 있는 '이것'과 찾는 대상인 '그것'은 분리되어 있는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한한 도(道)는 언제나 바로 당장 눈앞에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그만큼 이 세상 모든 것은 분리되어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이 아니고, 한 몸통으로 있다는 것을 

목전(目前), 눈앞, 텅~빈 바탕,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당처(當處 : 여기, 이 자리)라는 방편의

말을 사용해서 억지로 표현을 해본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부처(佛)입니다. 내가 바로 부처(佛)입니다. 내가 바로 마음(心)입니다. 당신이 바로 

마음(心)입니다. 당신이 바로 도(道)입니다. 내가 바로 도(道)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즉 중생(衆生)

이 마음(心)입니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입니다. 다시말해 마음(心), 

부처(佛), 중생(衆生), 이 셋은 어떤 차별 분별 분리도 없는 한 몸통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떠나 따로 부처(佛)를 찾는 것은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꼴이고, 눈을 두도 눈을 찾는 꼴입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찾는 꼴입니다. 찾으려는 대상인 도(道), 법(法), 진리(眞理), 깨달음(覺), 

부처(佛), 마음(心), 열반(涅槃), 해탈(解脫), 견성(見性), 자성(自性 : 자체의 성품), 불성(佛性 : 부처의 

성품), 본성(本性 : 근본성품) 등의 방편의 말은 놔두고, 먼저 그 대상을 찾고 있는 놈이 누구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명백(明白)하게 확실(確實)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도(道), 법(法), 진리(眞理), 깨달음(覺), 부처(佛), 

마음(心), 열반(涅槃), 해탈(解脫), 견성(見性), 자성(自性 : 자체의 성품), 불성(佛性 : 부처의 성품), 

본성(本性 : 근본성품)을 등의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찾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찾을으려는 대상인 도(道), 법(法), 진리(眞理), 깨달음(覺), 부처(佛), 마음(心), 열반(涅槃), 해탈(解脫), 

견성(見性), 자성(自性 : 자체의 성품), 불성(佛性 : 부처의 성품), 본성(本性 : 근본성품) 등의 방편의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이 진짜 중요합니다.


대상인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찾고 있는 그 놈이 누구입니까? 무엇이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찾고 있나요?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찾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입니다. 


바로 그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찾는 놈이 찾을 대상인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

키는 '이것'입니다. 찾아야 할 객관 대상이 따로 있고, 찾는 놈인 주관이 따로 따로 있다면, 그것은 주관

(主觀)과 객관(客觀)이 분리되어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일 뿐입니다. 


분리되어 나뉘어지는 것은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이 아닙니다. 둘로 나뉜 것이 아닌 것 

불이법(不二法)만이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입니다.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찾는 놈이 있다는 사실이 곧 찾고 있는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를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도(道), 법, 진리, 깨달음, 부처를 찾는 당신이 곧 도(道), 법, 진리, 깨달음, 부처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찾는 '이것'이 찾는 '그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작용(作用)하는 순간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

는 '이것'이 '그것'이 명백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양으로 '이것'을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습관은 모양을 볼 줄 아는 것에만 익숙하다 보니, 모양이 없는 '이것'을 모양에서만 

찾으려고 하기 대문에 도(道)'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다는 사실이 눈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로 눈을 찾아야 눈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