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와 먼저 통해야 남과 통한다

장백산-1 2020. 2. 15. 01:46

나와 먼저 통해야 남과 통한다   - - 대원 스님


[대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김00라고 합니다.

[스님] 선방에 와서 공부해야겠다는 관심을 미국에서도 가지고 있었던가요?


[대중] 네, 그렇습니다.

[스님] 한국에서는 가본 선방이(禪房) 있나요?


[대중] 여기가 처음입니다.

[스님] 어제 저녁에 정진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대중]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조금도 건너가질 못해서 참 답답합니다.

[스님] 그래요. 지금껏 살면서 세상살이만 했지 나를 돌이켜 보고 나는 무엇인가를 공부해 보는 것은 많이 안했잖아요?


[대중] 예, 아무래도 미국까지 갔을 때는 삶의 굴곡이 있으니까 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나는 누구인가?를  많이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답을 못 찾으니까, 한걸음도 못 나가니까 답답했습니다.

[스님] 일념이 잘 안되지요?


[대중] 늘상 마음에는 나는 누구인가?를 붙들고 있는데, 아까 스님 말씀대로 깜깜한게 눈 뜬 장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스님] 나는 무엇일까? 참구해 가는 마음이 깊어지고 오롯하게 둥근 달처럼 성성하게 일념으로 이어져 나가야 비로소 우리 중생의 견해(見解), 중생이 익힌 습성(習性)이 다 무너져요. 그래야 본인 마음의 세계가 비어져서 맑아지고 자기 마음의 진리 세계로 돌아오는데 가까워져 가는 거예요.


[대중] 스님. 이렇게 소중한 시간에 가장 크게 제 마음 속에 있는 게 ‘소통(疎通)’입니다. 가족과의 소통, 자식과의 소통.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이 하는데 소통이 잘 되질 않습니다.

[스님]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지요? 화합도 융화도 안되고.


[대중] 예. 이게 무엇인지. 개인적으로는 이번에도 한국에 온 게 자식한테 들려주고 싶은 거는 세상을 편하게 쉽게 안락하게 사는 삶 보다는 인성(人性)을 깨닫고 바르게 남도 배려하며 사는 게 인생이 편해진다는 걸 제가 깨달았기 때문에  그걸 자식과 같이 좀 나누고 싶은데, 그게 안 통하니까 참 어렵습니다.

[스님] 공감이 갑니다. 현실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도 그 자식이 내 뜻과 서로 상치가 되고 안 맞거든요. 소통(疎通)이 안 돼요. 그렇지요? 이게 오늘날 현실이에요. 거기서 사람들이 괴로움이 많아져요. 더구나 부부지간 에도 소통이 잘 안돼요. 부부지간에 잘 소통하면 극락천당인데.


[대중] 부부간에 소통되는데 20년 걸리더라구요. 요즘에는 남편과 저도 조금 서로 알아듣습니다. 저도 남편을 존중하게 되고 더 위하게 되고 그런 건 있습니다.

[스님] 그것도 삶에서 그런 정도로 좀 소통이 되고 이해를 해서 그런건데, 실지로 소통하려면 부인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내가 나와 먼저 통해야 상대방한테도 통해져요. 내가 나를 통하지 않고는 남한테 통해지지  않아요. 임시적으로 통해졌다 하더라도 그건 임시방편이지 영원하지 않아요. 또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내가 나와 소통을 한 사람은 부처의 마음, 즉 지혜(智慧)와 자비심(慈悲心)을 쓰게 되거든요. 불성(佛性, 부처의 성품, 지혜(智慧)와 자비심(慈悲心)은 모든 곳 모든 것에 통합니다. 무한한 자비심, 무한한 지혜를 쓰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부부지간에 부모자식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 안 좋은 부분을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한한 자비심, 무한한 지혜에서 나오는 거지요. 곧바로 방책을 써서 서로 융합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게 지혜(智慧)인데 그게 바로 부처의 마음(佛心), 부처의 성품(佛性)이에요.


남편의 한마디 말을 부인이나 아들이 들었을 때 더울 때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 같이 좋게 느껴진다면 감동을 받고 좀 더 말씀해주셨으면 하고 바라지요. 그게 안 되는 원인과 허물이 어디 있느냐면, 상대방한테만 있는 게 아니고 나한테 있는 거예요. 내가 나와의 소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안 통하게 되면 유유상종이라고 깡패가 깡패끼리 서로 만나면 서로 죽기 살기로 사정없이 아수라장 같은 기운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본인한테서 좋은 불성의 기운이 나와야 되는데, 불성의 기운이 나오면 불성의 기운은 모든 걸 녹여요. 봄이 얼음을 녹이듯이 서로 막혀 있는 부분을 녹여요. 그래서 상대방이 상당한 감화를 받습니다.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거지요. 가족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회사 직원들한테 그렇고, 바깥사람한테도 그렇고, 모든 데서 다 화합이 안돼요. 본인이 막혀있어서 그래요. 본인이 막혀 있는 부분을 터야 돼요. 그게 화두예요. 


무엇인가 지극히 일념으로 하면 자기의 막혀 있는 부분이 터집니다. 그러면 그게 무한한 자비심(慈悲心)을 쓰게 되고 무한한 지혜(智慧)를 쓰게 됩니다. 아시겠지요? 내가 나와 소통하는 부분은 일체 다른 견해가 없어야 돼요. 무슨 신이니 부처니 마음이니 중도실상이니 본질이니 이런 건 다 소용이 없어요. 그런 건 쓰레기통에 다 버리고 초연히 백지로 돌아가서 나는 무엇일까? 그것 뿐이라. 그 외에 다른 생각이 쑥 들어오면 그건 분별(分別) 망상(妄想)이라. 그래서 얼른 다시 나는 무엇인가?로 돌이키는 거라. 이건 아닌데 나는 무엇이지? 나라고 하는 건 본래 무엇일까? 그걸 일념으로 지극히 해서 통해야 돼요. 


(2019.12.08 학산대원선사) 출처 : 학림사 오등선원 지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