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이글먼의 ‘SUM : 내세에서 찾은 40가지 삶의 독한 비밀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진지하게 상상
낙상 경험 후 죽음 고찰한 저자
죽음 이후 세계와 인간 삶의 조건
40가지 방향으로 상상력 펼쳐
지금의 삶이 죽음 이후 삶 결정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종교와 철학은 이 물음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크게 갈라져왔다.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점(觀點) 차이로 크게 달라진다.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윤회(輪廻)’를 기정사실로 생각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짐에 따라 윤회(輪廻)에 대한 입장도 다양해지고는 있지만, 죽어 삶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은 단견(斷見)이라는 생각은 그 모든 논쟁의 단단한 토대를 이룬다.
“뇌 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는 찬사를 받는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이 책을 쓴 때는 대학원 시절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상 경험을 한다. 영원(永遠)과도 같았던 낙상 순간(瞬間)을 경험한 후, 그에게 죽음은 중요한 주제가 된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책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와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해 40가지 방향으로 상상력을 펼친다. 기발하고도 진지한 상상은 신과 죽음과 내세와 우리 삶의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상상하건 분명한 건 있다. 지금의 삶이 죽음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 [첫 번째 비밀]은 내세는 “지상에서 겪은 모든 일을 다시한번 겪는” 곳이다. 단, 순서가 새롭게 정렬된다. 같은 종류를 모아서 한꺼번에 경험하는 것이다. “한 번도 깨지 않고 30년 동안 내리 잠만 자고 일어나서 5개월 동안 변기에 앉아 잡지를 뒤적인다. 강도 높은 고통을 한번에 장장 27시간 동안 견딘다. 그 시간 동안 뼈가 부러지고, 자동차가 충돌해서 살갗이 찢기고, 아기가 태어난다. 그러나 고통을 한번 겪고 나면 내세에서 고통은 더 이상 없다.”
삶이 재정렬된다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의 실체가 분명해지리라. TV앞에서 멍하니 보낸 시간, 남 험담하며 보낸 시간, 화를 내느라 지체한 시간 등등...평화를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지낸 시간은 그중 얼마나 많은 지분을 차지할까. 남을 돕고 함께 기뻐한 시간은 또 얼마나 될까. 지금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고쳐앉게 된다.
죽음은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스물일곱 번째 비밀]은 ‘인간은 내세에서 몇 살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죽은 나이로? 아니면 젊은 시절의 나이로? 신은 모든 인간이 다양한 나이의 자아로 분열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나들이 시간을 초월하여 함께 산다. 우연히 길에서 76세의 나, 28세의 나, 35세의 나를 만나 반갑게 아는 척한다. 그러면서 그들과 나의 공통점이 다른 사람과 나의 공통점만큼이나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그들과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구에 존재했던 당신은 사실상 사라졌고 내세엔 당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한다. 모든 나이를 거쳐 왔지만 그중 어느 한 나이도 온전한 당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 무아(無我)가 진실이라는 붓다의 말씀은 이 가상의 내세(來世)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서른아홉 번째 비밀]은 윤회(輪廻)를 아름답게 상상한다. “당신의 마지막 숨결과 함께 당신을 구성하고 있던 무수한 원자(原子)들은 당신 주위로 스며든다. 죽은 몸이 부패되면서 원자들은 새로운 배열(配列)을 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배열을 시작한 원자(原子)들은 식물의 새잎이 되고, 점박이 달팽이의 껍데기가 되고, 옥수수의 알갱이가 된다. 딱정벌레의 위턱이 되고, 양귀비의 꽃잎이 되고, 뇌조의 꽁지깃이 된다.” 상상해보자. “이제부터는 당신의 몸짓은 추켜올리는 눈썹, 숨 가쁜 키스 대신 곤충의 날갯짓, 갈대의 흔들림, 흰돌고래의 들숨이 된다. 이제부터는 당신의 기쁨은 부서지는 파도에 따라 춤을 추는 해초, 소나기구름에 흔들리는 깔대기 구름, 알을 낳는 물고기의 파닥거림, 물살에 떠내려가는 반짝이는 조약돌이 된다.” 생명은 확장되고 삶은 편안하게 흐른다. 이런 윤회도 좋지 않은가. 죽음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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