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물이 아닌 적이 있던가 / 릴라
날씨가 맑은 날 바닷가에 가서 바닷물이 일렁이는 현상을 본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바다 표면에
크고 작은 물결이 인다. 배가 꼬리를 끌 듯 지나간 바다 위에 기다란 포말이 하얗게 일어나고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파문이 인다. 배가 지나가지 않은 바다 표면도 멈춰있지 않다. 잔잔한 물결이
곱게 일렁이고 그 물결 따라 태양빛이 잘게 부서지며 비췄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바다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있는 그대로 비추고, 내리쬐는 태양빛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할 수 있게 물결이 일어난다.
바다 위에 어떤 물결이 일어나든 물결이 물 아닌 적이 있던가. 광대무변한 바다는 끊임없이 인연 따라
갖가지 물결모양으로 출렁거리지만 물결은 언제나 물이다. 마치 365일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모든
물결이 마음의 반영이듯이 어떤 삶의 물결이 일어나도 어떤 삶의 물결도 마음이 아닌 적이 없다.
바다는 잔잔한 물결을 좋아하고 거친 물결을 싫어하지 않는다. 바다는 어떤 분별 차별 구별도 하지
않는다. 바다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면 잔잔한 물결로 반응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마치 스스로
성난 것처럼 거친 파도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 물결의 잔잔하고 거침은 바다의 선택이 아니다. 바다는
잔잔한 바람에 잔잔한 물결로 반응하고 거친 바람엔 거친 파도로 반응한다. 바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들 스스로 삶에서 느끼는 분열과 갈등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결의 크고 작음에 분별 차별 구별을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 평안한 삶의 모습을 마치 잔잔한 물결로 보고, 추함, 두려움, 분노의
삶의 모습을 거친 파도로 보아 그것을 서로 다른 것들로 분별 차별 구별하면서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이 있어서 자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마음이 없다. 바다가 온갖
인연을 있는 그대로 비추듯, 마음은 온갖 삶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을 뿐이다. 마음은 아무런
뜻이나 의도 없이 인연 따라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을 뿐이다. 마음은 아무런 의도 없이 단지 비추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그 모습을 아름다움과 추함, 고요함과 시끄러움, 평안과 불안으로 나누어
괴롭다고 물결친다.
그러나 괴롭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하나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물결이 일렁이더라도 물결이 물이
아닌 적이 없듯이 사람들에게 어떤 삶의 경험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삶의 경험이 마음이 아닌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의도 의지 욕망 욕구, 인식 알음알이 분별심은 결코
마음을 벗어나 일어날 수 없다.
모든 존재가 하나이고 모든 경험이 하나이다. 바다는 물결을 쉬어본 적이 없다. 마음은 비춤을 멈추지
않는다. 물결 없는 바다가 없고 모양을 떠난 마음이 없다. 지금 가만히 앉아 주변의 물결을 경험해보라.
온갖 다양한 형태와 빛깔과 소리와 움직임이 물결치고 있지 않는가? 마치 스스로 바다가 되어 온갖 물결을
경험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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