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도 없다 - - 몽지&릴라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가 작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온갖 경험을 하며 그런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는 길 수도 있고 짧은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치가 맞고 내용이 너무도 치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구성이 허술하고 논리가 맞지 않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짧은 문장 아니면 간단한 단어들을 열거한 이야기답지 않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 모두가 자기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같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자신을 현혹하는 내용들이다. 사실은 이 세상에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따로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기를 위한 이야기이고 자신이 짓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때로 이미지로 변화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글자나 문자 또는 마음속 사유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축적된 경험과 기억, 지금 경험되는 감각적 자극이 재료로 혼합되면 이같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진짜 실재하는 사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본래 어떤 이야기도 실재하지 않는다. 삶에는 본래 어떤 이야기도 없다. 사람들이 직접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에는 어떤 단어도 없고, 어떤 문장도 없고, 어떤 이야기도 없다.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들과 물샐 틈이 없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것'에서 삶에 관한 모든 이야기, 존재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래 우리 자신은 생각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본래 우리가 사는 삶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에 맞춰진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시점에 내가 태어나 일정한 시간을 살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늙고 병들어 사멸하는 구조가 우리의 삶이 아니다. 존재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일어나는 허망한 생각, 환상이다. 진정한 삶은 모든 이야기를 써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것'이다. '이것'은 그냥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것은 사람의 얼굴도 아닌, 사물의 모슴도 아닌, 창조주의 얼굴도 아닌, 하나님의 얼굴도 아닌, 부처의 얼굴도 아닌 그냥 이렇게 무형(無形)의 창조성(創造性)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것, 무형(無形)의 창조성(創造性) 이것은 얼굴이 없지만 분명하다. 이것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것은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이것은 그냥 내 몸과 내 존재를 비추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실재(實在)이다. 이것이 존재와 삶의 온갖 이야기를 비추고 있다.
이것은 그냥 이것이다. 우리가 이것에 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을 어떤 얼굴로 찾고 있거나, 이것을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을 때이다. 우리가 이것에 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나름대로 그린 이것에 대한 이미지, 그림을 가지고 이미지나 그림과 같은 이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해서는 찾아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 이전에 이것이 있고 이것이 그이 세상 모든 것을 지금 이렇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을 어떤 형태로 찾거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찾으려는 마음을 몽땅 내려놓았을 때 이것은 저절로 드러난다. 이것에 대한 그림이나 이미지를 몽땅 내려놓았을 때 이것은 찾지 않아도 저절로 용솟음치듯 드러난다. 이것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질 때라야 이것은 스스로 드러난다. 이것 앞에서 내가 무용지물이 될 때 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이것을 보게 된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 우리 존재 자체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는 소음이 없다. 삶은 어떤 그림도 아니고 느낌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삶은 그냥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것이다. 이것이 나 자신이고, 내 삶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내가 만지는 물건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이다. 아무런 이야기와 소음이 없는 그냥 이것! 이것이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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