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있는 것이 여래다 / 몽지님
예전 노(老) 거사님 회상에서 함께 공부했던 도반이 노 거사님 말년에 녹음된 음성파일을 몇 개 보내
왔다. 그 중 몇 개를 듣다 왈칵 눈물이 솟았다. 마지막 뵈었을 때보다 치아를 많이 잃으셨는지 분명치
않은 발음에 확연히 기력이 쇠진한 음성, 여러 도반들과 후사(後事)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대목…...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해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는 모습, 늘 참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그리워하시는 모습…. “참(사람)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라고 탄식처럼 누군가에게 하시는
말씀에 송구함일까, 죄스러움일까 하염없는 눈물이 났다.
병상(病床)에서 도반과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셨다. ‘범소유상 개시
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통 ‘즉견여래(卽見如來)’를 ‘곧바로 여래를 본다’라고 풀이하는데, 노 거사님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보고 있는 것이 여래다’라고 풀이하셨다. 오랜만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번갯불이 번쩍 하고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있는 것이 여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듣고 있는 것이
여래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여래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여래다.
팔을 쭉 뻗어 한 손가락으로 크게 원을 그리시면서 “일스응(一乘)~원교(一乘圓敎)~대방(大方)~광불
(廣佛)~화엄(華嚴)~경(經)~” 하고 나지막이 게송을 읊조리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거사님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내 눈앞에 살아계신다. 지금도 쉼 없이 이 미련하고 불초(不肖)한 나에게 법을
설하고 계신다. 가을빛에 붉게 물든 낙엽으로,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로, 코끝에 와 닿는 금목서 향기로
언제나 영원하게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법을 설하고 계신다. 그래서인가 만해
한용운 스님은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노래했던가?
거사님의 회상(會上)의 말석(末席)에 잠시나마 있었던 인연으로 겨우 비척비척 이 마음공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마음공부에 있어 인연(因緣)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이 공부만큼 절실한 곳이 또 있을까? 내가 무슨 복이 그리 많아 그 분을 살아생전에 만나
뵐 수 있었던가? 친견(親見)해야 한다. 몸소 직접 보아야 한다. 말과 개념이 아닌 직접적인 체험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보는 것, 몸소 보는 것, 보는 것이 곧 여래인 도리(道理)이다.
모양 없는 여래(如來), 즉 청정법신(淸淨法身)이 모양 있는 색신(色身)으로 화현되어 나타나서,
모양 있는 색신을 통해 모양 없는 청정법신(淸淨法身), 즉 여래(如來)를 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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