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환상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즉 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아름다움과 우정과 사랑을 떠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과연 이런 죽음의 확실성 속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우선, 죽음이라는 현상이 확실해질 때에만 마음 편안히 이완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죽음이라는 현상이 불확실할 때 마음 편히 이완하는 게 어렵다. 그대가 오늘 죽는 사실을 안다면 그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시간을 헛되게 낭비할 이유가 있겠는가! 살아갈 날이 단지 오늘 하루 남았다면 최대한 강렬하게, 최대한 전체적으로 삶을 살 것이다.
삶을 강렬하고 전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올 수 없다. 죽음이 오더라도 삶을 강렬하고 전체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죽음을 크나큰 위안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 그토록 삶을 강렬하고 전체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죽음은 친구처럼 다가온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어 완전히 편안하고 안락한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강렬하고 전체적인 삶 이후에 죽음은 그렇게 다가온다. 죽음은 결코 추하지 않다. 죽음보다 더 깨끗한 것은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은 아직 삶으로 채워지지 않은 구멍이 몇 군데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큰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그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가 삶이라는 춤을 좀 더 빠르게 추어야 하고 삶이라는 불을 모두 완전하게 태워야 한다는 것을 그대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좀 더 빠르게 춤을 추어서 춤을 추는 사람이 사라지고 오직 춤만 남게 하라. 그러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를 엄습할 가능성은 없다.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삶을 완전하게 강렬하게 전체적으로 산다면, 왜 굳이 오늘이 아닌 내일을 걱정하겠는가? 내일 할 일은 내일이 되면 알아서 할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에게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일용할 빵을 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옳다. 왜냐면 예수는 내일 먹을 빵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늘은 오늘로서 충분하기 때문이다.
매순간순간이 스스로 완성된다는 점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매순간순간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을 때에만 모든 것을 떠나가야 한다는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느낌이 일어난다. 그러나 매순간순간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면 시간, 공간, 마음 등의 개념(槪念)은 사라진다.
어떤 사람이 어느 상인(商人)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은 몇 살입니까?” “360살입니다.” 그는 상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크게 말해 보세요. 내가 당신이 하는 말을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상인이 크게 소리쳐 말했다. “360살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다시 상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말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요. 당신은 불과 60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요.” 그러자 상인이 다시 대답했다. “당신 말도 맞아요. 달력으로 따지자면 나는 60살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으로 따져보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여섯 배는 더 많이 살았어요. 그래서 60년을 살고 나니 360년을 산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삶을 완전하게 강렬하게 전체적으로 사는 것이 관건이다. 삶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 하나는 황소처럼 하나의 선을 따라 수평적(水平的)으로 사는 삶이다. 다른 하나는 붓다(깨달은 자)로 사는 삶이다. 깨달은 자는 높이와 깊이가 있는 수직적(垂直的)인 삶을 산다. 그러면 매순간순간이 영원(永遠)하다.
하찮은 일에 시간을 헛되이 허비하지 말라. 삶을 전체적으로 강렬하게 완전하게 살고 노래하고 춤추 고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것이 흘러넘치도록 실행하라. 그러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늘은 오늘로 충분하다. 삶을 완전하게 살아라. 그런 삶은 다른 걸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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