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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세계를 알아봅시다.

장백산-1 2021. 3. 2. 15:33

꿈 속의 세계를 알아봅시다.  - - 법상스님


꿈 속의 세계는 실제(實際)로 실재(實在)는 세계가 아니라, 나의 분별을 하는 의식(意識), 나의 분별을 하는 마음(분별심/分別心), 나의 분별을 하는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虛想)의 세계일 뿐이다.

내 분별을 하는 의식, 분별을 하는 생각, 분별을 하는 마음이 허구로 꿈을 만들어 꿈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나와 남들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꿈 속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꿈 속 세상이 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꿈 속에서는 그 꿈 속 세상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진짜로 나도 있고 남들도 있고 세계도 진짜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은 꿈속 세상에 등장하고 있는 나와 수많은 사람들과 꿈 속 세계와 우주, 삶 자체가 사실 꿈을 꾸는 사람의 하나의 의식(意識), 분별심,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의 의식(意識), 하나의 분별심, 하나의 생각 그것을 '꿈의식' 또는 '꿈을 꾸는 자(者)'라고 해 보자. '꿈의식'이 꿈으로 드러나 꿈 속의 나와 남과 세계와 우주 전체를 만들어냈다. 꿈 전체를 만들어냈다.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속에서는 그와같은 사실을 모른 채, 나도 남들도 세계도 따로 따로 분리되어서 독자적으로 독립적으로 있다고 여긴다. 꿈 속에 있는 '하나의 몸'만을 '나'라고 여기면서, 나와 다른 바깥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 꿈이 바로 지금의 현실과 같다면 어떨까? 바로 그렇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생생하게 진짜 처럼 느껴지는 이 현실(現實)이 곧 꿈과 다르지 않다.그렇기에 수많은 선지식은 사람들에게 허망한 꿈인 현실(現實)에서 어서 빨리 깨어나라고, 삶이라는 꿈이 진짜가 아니라고 설해 왔다.

내 몸도 분별을 하는 내 의식, 분별을 하는 내 생각, 분별을 하는 내 마음은 실체(實體)가 아니기에 무아(無我 : 나는 없다)라고 했고, 세상도 실체가 아니기에 비실체성(非實體性)이며 연기성(緣起性)이라고 했다.

진정한 '나', 진짜 나, 본래의 나는  꿈 속 세상에 등장하는  한 개인이나 한 육체가 아니라 꿈 전체(全切)가 바로 진정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짜 나, 본래의 나임을 알려주고자 옛 선사들은 부단히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왔다.

"이 송장(육체)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

"들을 때 듣는 놈, 생각할 때 생각하는 놈이 누구냐?"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이 몸뚱이는 말할 줄도 모르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데, 그 모든 것을 하는 주인공이 누구냐?"

 
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각자 자기라는 개성이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있는 사람의 의식, 생각, 분별심이 작용을 하는 것일 뿐이다. 꿈 전체가 내 분별을 하는 의식, 내 분별을 하는 생각, 내 분별을 하는 마음이 꾸는 꿈일 뿐이니, 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일 뿐이고, 꿈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꿈꾸는 자, 꿈의식이 작용을 하는 것이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편(方便)이고 비유(比喩)다.

이 꿈의 비유(比喩)를 잘 사유해 보자.

나라는 존재는 몸도 아니고, 분별을 하는 생각, 느낌, 의지, 욕망, 욕구, 분별을 하는 의식, 분별을 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의 꿈 전체(全切)이다. 온 우주(宇宙) 전체(全切)가 가 하나의 꿈일 뿐이다. 그 전체로써의 하나, 꿈이라는 전체의식이야말로 진정한 나, 진짜 나, 본래의 나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즉, 꿈 속에 등장하는 한 개체인 '나'가 진짜 '나'가 아니라, 꿈 전체(全切)가 그대로 '진짜 나' '본래의 나' '진정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따라서 꿈 속에 등장하는 개체적인 나와 수많은 사람들, 우주, 자연, 빌딩, 온갖 사연들, 온갖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그 모든 것이 '진정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것이다.

이를 일컬어 방편으로 허공성(虛空性)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진짜 나' '본래의 나' '진정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내 몸이 아니라 허공 전체가 그대로 한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부처(佛)와 중생(衆生)과 마음(心)은 '하나'다 차별이 없다 라고 말한 것이다(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인 중생들이 사실은 전부 다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꿈꾸는 자'인 하나의 부처였으며, 따로 따로 개개인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전체의식 그 마음 하나 밖에 없다 라는 말이다. 이것이 일심(一心), 한마음이며, 본래면목(本來面目)이고, 참된 자기의 본성, 진짜 나, 본래의 나, 진정한 나이다. 이와같이 진정한 나, 일심(一心), 한마음, 본래면목(本來面目), 참된 자기의 본성, 진짜 나, 본래의 나는 나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별과 우주와 일체 모든 존재, 삼라만상 전부를 이렇게 만들어낸 '무엇'이다.

'꿈꾸는 자'가 꿈 속 세상을 진짜인 것처럼 꾸며냈듯이, '이 무엇' 하나가 이 세상 전부를 진짜인 것처럼 꾸며낸 것이다. 이것이 곧 화엄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그러니, 어떻게 이 몸과 의식 생각 마음만을 나라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마음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 몸, 생각, 느낌, 의지, 의도, 충동, 욕망, 욕구, 의식 분별심이라는 이 오온(五蘊)을 나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이고, 초기불교의 오온무아(五蘊無我)이다.

그렇다고 물론 '꿈꾸는 자'라고 하는, '진짜 나'라고 하는 그 무엇이 따로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꿈은 하나의 비유(比喩)일 뿐이다. 그저 눈앞에 있는 '이것'일 뿐이다. 지금 매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있는 그대로 그러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대로의 진실만이 언제나 항상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