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주인'
어디까지나 방편(方便)으로 사용하는 명칭이지만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가 우리들의 진짜 주인(主人)이다. 나의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가 내 감각들과 마음을 도구(道具) 처럼 활용하면 그와같은 활용은 옳다. 그러나 이와같은 옳은 활용과는 반대로 인간에게는 모든 것의 앞과 뒤, 위와 아래가 뒤바뀌었다. 사람들은 진짜 주인(主人)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렸고, 감각이나 마음 같은 손님들이 진짜 주인(主人) 노릇을 하고 있다. 감각이나 마음 같은 손님들은 손님들의 경험이 진실하다고 주장한다.
도구(道具)로서 감각과 마음이 완벽할 정도로 진실하면, 진짜 주인(主人)은 도구(道具)인 감각과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 진짜 주인(主人)이 도구(道具)인 감각과 마음을 사용하지 않으면 꺼꾸로 도구(道具)인 감각과 마음이 진짜 주인(主人)을 이용하게 된다. 감각과 마음이 주인(主人)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감각과 마음은 어디까지나 손님일 뿐으로 도구인 감각과 마음은 진짜 주인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제 기능이다. 그러나 진짜 주인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의 불행(不幸)이다.
사람들의 생각, 감각 느낌, 욕망 욕구 의지 의도 충동, 인식 알음알이 지식 이면(裏面)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가 있다.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사람들의 육체 안에 살며,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그대의 육체이다.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사람들의 육체 안에 살며,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그대의 육체이다 라는 이 문장은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이고 진정으로 옳은 문장이다.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사람들의 육체 안에 살고,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는 사람들의 육체이다. 사람들의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와 사람들의 육체는 분리(分離)되어있지 않고 동전(銅錢)의 앞과 뒤 처럼 동일(同一)한 하나의 두 얼굴이다.
그러나 동전의 한 쪽 얼굴인 육체가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동전의 다른 쪽의 얼굴인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존재(Being)’ 또한 비난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도구인 감각과 마음이 주인(主人)이 된 것이다.
사람들의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와 사람들의 육체는 분리(分離)되어 있지 않고 동전(銅錢)의 앞과 뒤 처럼 동일(同一)한 하나의 두 얼굴이기 때문에 육체가 비난을 받으면 진짜 주인(主人)인 ‘자기(Self)’ 또는 ‘존재(Being)’도 동시에 자동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가짜 존재, 도구의 기능만 있는 감각과 마음이 인간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감각과 마음에 의해 지배 당하는 것이다. 도구인 감각과 마음은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갖춘 최고의 지혜(智慧)보다 사람들의 육체 안에 더 많은 이성(理性)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육체가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최고의 지혜를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과연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에게 미덕(美德)이 있고 그 미덕이 사람들 자신의 미덕이라면 사람들은 누구와도 자신의 미덕을 공유하지 않는다. 온전히 한 개인으로 혼자서 살수록 독창적이 될 것이며 독창성 안에 축복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나는 늘 반복해서 말해왔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그대에게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그대의 미덕이다. 타인이 가르친 미덕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 발견한 미덕이다. 그대는 자신의 미덕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독창적인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의 서명이자 지문처럼 독창적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대의 미덕을 가질 수 없다.”
자연은 절대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대가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비슷한 뱔견은 비슷할 뿐이지 똑같지는 않다. 나무와 잎사귀를 살펴보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잎사귀 하나 하나는 각자의 개별성을 갖고 있다. 똑같은 잎사귀는 하나도 없다. 바닷가에 가보라. 조개껍질을 보면 똑같은 조개껍질은 하나도 없다. 돌멩이를 보아도 똑같은 돌멩이는 하나도 없다. 존재계가 가진 창조성은 대단하다. 존재계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을.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오직 존재계(存在界)만이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역사는 무의식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놓여있기 때문에 역사는 반복된다. 무의식적인 사람들은 독창적일 수 없다.
-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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