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텅~빈 마음으로 돌아오라.

장백산-1 2021. 4. 10. 16:37

텅~빈 마음으로 돌아오라.   --몽지와 릴라

불교에서 궁극(窮極)을 가리키는 방편(方便)상의  용어들이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에 법문을 들을 때나 경전을 읽을 때나 헷갈릴 때가 많다. 초기불교 시대 붓다 가르침의 핵심(核心)은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고통(괴로움)을 받는 원인(原因)은 내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 대한 허망한 집착(執着)이다. 따라서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고통(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독립적인 실체로 따로 있지 않다는 실상, 즉 무아(無我)라는 사실에 대해 자각(自覺)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기불교 이후 무아(無我)의 이치에 관한 가르침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방편의 용어가 사용된다. 아공법유(我空法有), 아공법공(我空法空), 여래장(如來藏), 만법유식(萬法唯識), 일심(한마음, 一心) 등 시대에 따라 궁극(窮極), 즉 진실(眞實)을 가리키는 방편(方便)으로 사용하는 용어들은 따로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내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한다.

붓다의 가르침인 무아(無我)는 개인적으로 독립적인 내가 없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아공법유(我空法有)는 사람들이 무아(無我)라는 방편에 빠져 허무주의가 팽배해지자 개인적인 나는 없지만 변함 없는 법성(法性)은 있다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공법유(我空法有) 이후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나(我)도 없고 법(法)도 없다, 즉 아공법공(我空法空)이라고 한 것은 법(法)이 따로 있다는 분별 의식(分別意識) 분별심(分別心)에 대한 경책이며,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방편의 용어는 아공법공(我空法空)에 따른 허무주의에 대한 반전으로 텅~빈 불성(佛性)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후,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방편의 용어가 독립적인 실체로 따로 있는 것처럼 변질되자 모든 것은 허망(虛妄)한 의식(意識)일 뿐, 즉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지적이 나왔으며, 이후 조사선(祖師禪)에서 방편으로 사용한 일심(한마음/一心)이라는 용어 역시 방편으로 사용한 용어인 아공법공(我空法空), 여래장(如來藏), 만법유식(萬法唯識)을 통합(統合)하여 텅~빈 마음 하나뿐임을 말한 것이다.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의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언어가 끊어지고 분별심이 갈 곳이 사라진 진여심(眞如心)이라는 방편의 용어를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가리켜 보였다.

​이처럼 각각의 시대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窮極)이나 진실(眞實)에 대해 다른 방편의 용어들이 사용된 것은 앞 시대에 방편으로 사용한 용어의 함정에 빠지는 것에 대한 경계이지 나나 법이 있다 없다를 말한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이라는 방편의 용어는 분별의식(分別意識) 분별심(分別心)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해방, 마음의 자유를 말한다.

사람들은 있다/없다, 옳다/그르다, 아름답다/추하다, 너/나, 탄생/죽음, 시작/마침, 간다/온다, 등 텅~빈 마음에서 일어나는 허망한 분별의식(分別意識) 분별심(分別心)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이런 분별의식 분별심의배경인 텅~빈 마음 하나뿐인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 이 텅~빈 마음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고, 형상은 없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서 있다/없다, 옳다/그르다, 아름답다/추하다, 너/나, 탄생/죽음, 시작/마침, 간다/온다 등의 허망한 분별의식(分別意識) 분별심(分別心)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이다.

​이처럼 궁극(窮極), 즉 진실(眞實)을 가리는 시대별 가르침의 공통적인 핵심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 않지만, 궁극(窮極)이나 진실(眞實)을 깨닫게 하는 도구인 방편의 용어는 시대마다 다르게 사용되었다. 초기불교(初期佛敎)에서는 수행을 통해 분별의식 분별심을 분석적으로 관찰해서 분별의식 분별심을 해체하는 과정을 점차적으로 밟았다면, 조사선(祖師禪)에서는 언제나 영원히 떠난 적이 없는 텅~빈 마음을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문득 자각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이 이것임을 돌이켜 깨닫도록 했다.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장애들은 실체적인 진실이 아니다. 실체 없는 분별의식 분별심에 사로잡혀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처럼 보이기 때문에 몰록 분별의식 분별심에서 깨어나면 이 세상 모든 것의실체성이 저절로 사라진다. 사람들에게 허망한 분별의 실체을 가리켜 보여서 문득 텅~빈 마음, 본성이 와닿으면 모든 분별심 분별의식이 텅~빈 마음, 본성임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분별 망상 번뇌에 사로잡혀 살아온 습관 때문에 처음부터 확연하게 텅~빈 마음, 본성 이 하나의 일이 쉽게 밝아지지 않지만, 텅 빈 마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텅~빈 마음, 본성 이 하나의 일이라는 자각이 일어난다. 이런 자각이 일어나면 분별의식 분별심을 상대로 씨름할 필요가 없고 점차적인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다룰 필요 없이 몸과 마음이 단지 분별심(分別心) 망상(妄想)일 뿐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고 이것으로부터 깨어남이다. 문득 견성(見性)할 뿐이지 다른 일은 거론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통해 만법(萬法),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이 텅~빈 마음 하나로 돌아와(萬法歸一) 이 세상 모든 것, 만법(萬法),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텅~빈 마음 하나, 본성 위에서 삶의 자유를 누리는 일이다.

​불법(佛法)은 마음법(심법/心法)이다. 이 세상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텅~빈 마음 하나뿐이라는 실상(實相)에 대한 깨달음이 시대(時代)를 초월(超越)한 마음공부의 핵심(核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