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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보시라도 그것은 우주적 사건이다

장백산-1 2021. 11. 17. 13:28

아무리 작은 보시라도 그것은 우주적 사건이다

                          [사진 달연 예쁠아 님이 제게 보시해 주신 작품입니다]


사람들은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흔히들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베풀고 나눔을 실천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자들을 다 구제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 세상의 어느 한 귀퉁이 고작 아주 작은 한두 개 마을, 내지는 몇몇 사람에게 밥 몇 그릇 나누어 주거나, 교육을 뒷바침해 주거나, 아무리 도움을 준들 겨우 그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실망을 한다. 아무리 우리가, 내가 열심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다고 한들 그 도움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이 세상을 밝히는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아 좌절감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베푼 아주 작은 나눔의 행위, 보시가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작은 나눔과 베풂일지라도그 작은 베풂과 나눔의 보시는 전체 우주법계를 감동시키고, 한 줄기 커다란 빛과 사랑으로써 우주법계에 기록되고 공명하여 더 많은 자비와 나눔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우주 전체로 퍼져나갈 수가 있다.

 

그 어떤 작고 보잘것 없는 보시일지라도 그것은 우주법계를 변화시킨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도 부드럽게 이 세상을 바꾸어 내는 무한한 권능을 담고서 말이다. 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한 보시는 고작 제3세계 어린 아이 한 명을 도운 것 뿐인데, 네팔이나 미얀마의 학교를 위해 고작 1만원을 베푼 것 뿐인데, 법보시 서적 고작 몇몇 권을 베풀었을 뿐인데, 그 작은 보시, 베풂과 나눔 그것이 어떻게 이 우주법계를 강력하게 자비의 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일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물질의 차원이 아닌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차원에서 내가 베푼 것은 고작 몇 만원이고, 한 두 명을 도운 것 뿐이고, 자원봉사를 며칠 한 것 뿐이지만, 정신적인 차원에서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사람들은 한 사람을 도왔을 때 뿌듯한 행복감과 도와줄 수 있었다는 기쁨과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느낌, 나의 작은 보시가 누군가를 배부르게 했다는 풍요의 느낌 등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행복한 느낌과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아주 작은 보시가 우주법계를 강력하게 자비의 빛으로 물들일 수 있는 핵심(核心)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때 중요한 것은 사실 물질적인 나눔에 있다기 보다는 도울 때의 그 행복한 느낌, 풍요로운 느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자신에 대한 대견하고도 뿌듯한 느낌, 누군가를 내가 돕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는 귀한 감정 바로 그런 느낌과 감정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법계가 원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풍요와 행복과 나눔의 정신이 깃든 그 느낌 감정 그런 마음인 것이다. 우주법계는 물질적 보시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시한 마음, 베풂의 그 풍요의 정신, 나눌 수 있다는 그 넉넉한 마음을 받는 것이다. 우주법계는 그 풍요와 나눔과 보시의 마음을 받아들여 다시금 우주법계 곳곳으로 공명시키고 더 많이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우주법계로 퍼져나간 보시의 마음, 나눔의 마음은 우주법계라는 무한(無限)한 정보장(情報場), 부처성품의 장(佛性의 場)을 통해 우주법계 끝까지, 세계 곳곳에까지, 아프리카의 굶주린 모든 어린 아이들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정신 깊은 곳에까지 그 보시의 마음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보시를 할 때, 사실 그 마음은 이 우주 전체에까지 퍼져나가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전 세계 모든 인구의, 유정 무정의 전체 생명에게 그 보시의 마음은 비국소적(非局所的)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정보장(情報場)으로 보시의 마음을 이해해 본다면 우리가 행한 순수하고도 귀한 보시의 마음은 온 우주의 모든 세포, 모든 공간, 모든 존재 전체에 정보로써 입력을 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법계는 보시 액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보시할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여 보시하는 그 마음의 정보를 온 우주 끝까지 비국지적인 정보장으로써 펼쳐 내는 몫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보시하는 마음은 우주적인 사건인 것이다. 한 사람이 오늘 행한 아무리 작은 액수의 나눔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작을 수가 없다. 그것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 그것은 곧장 이 우주 끝까지 전달되어 온 우주로 공명이 되고,모든 생명 모든 존재들에게 공명이 되어 공동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고무적인 것은, 바로 그 보시의 마음들이 모이고 또 모이게 되었을 때 이 우주법계는 단순한 수치적인 것을 넘어서서
여러분이 보낸 보시의 마음과 느낌과 감정들을 그대로 우주 곳곳으로 반사한다는 데 있다. 우주는 우리들의 보시의 마음을 받아서 고스란히 우주로 그 마음을 반사하고 반영하여 더 많은 행복과 나눔과 보시의 마음이 우주 곳곳에 뿌리내려지도록 도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시의 액수가 아니다. 우리가 보시할 때 느낄 수 있는 느낌, 감정, 고양된 기분, 풍요롭고도 뿌듯한 그 마음,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특히 가르침을 보시(법보시)하고, 법문을 들려주고, 지혜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상대방을 영적인 진보와 수행의 성숙으로 이끄는 토대를 베풀어 주었다면 그같은 보시는 물질적 베풂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겁을 이끄는 정신적인 완성의 토대가 될 것이 아닌가. 사실이 이러할진데, 어찌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보시하고 나누며 베풀지 않을 것인가.

자진 것이 별로 없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진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누는 순간의, 베푸는 바로 그 순간의 고양된 느낌, 감정, 마음 거기에 있는 것이다. 보시는 또 다른 보시를 불러오고, 보시는 또 다른 풍요로움을 불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우주를 위해 내가 행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보시와 나눔과 사랑을 베풀라. 힘겨워하는 이웃에게, 친구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작은 보시 사라의 나눔 그것은 결코 그 친구와 나 사이의 개별적인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작은 보시는 하나의 우주적인 사건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행한 그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우주 전체에 따뜻함과 사랑을 가져다주고 공명해주고 반사해 주는 역동적인 자비의 힘이 될 것이다.

나아가 내가 행하는 하루 삶의 모든 순간들이 조건 없는 사랑, 무주상의 보시(無住相布施)가 될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밝힌다는 고귀한 발원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단 하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에서도 보시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1.01.17  글쓴이 :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