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 어른들의 화두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제가 어린이였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저는 어릴적 시골 마을에 살았는데요, 기억나는 것은 매일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놀았던 기억들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부모님께서도 저보고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 하신 적도 없었지요. 언제나 저에게 주어진 역할은 재미있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어떨까요?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신나게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자연의 심성을 배워야 할 나이에 너무나 혹사되고 있지 않나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초등학생들의 하루 일과는 그야말로 공부, 공부, 또 공부로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국어, 영어, 수학은 물론이고, 운동도 태권도도, 피아노도, 미술도, 심지어 한문 자격증까지도 필수라고 하데요.
어린이날에 우리 어른들이 모두 함께 지혜롭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함께 고민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먼저 우리 부모님들께서 성적과 등수, 학벌 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들이 아이들의 행복과 전적인 상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적과 학벌에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전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행복이란 마음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이고, 결국 행복은 곧 내면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이 내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문제, 즉 돈, 명예, 권력, 학벌, 성적 등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행복이 외부 조건의 문제가 아닌 내부의 행복을 느끼는 감각, 마음의 자세에 관련된 문제라고 볼 때,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더 많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더 많은 행복의 조건을 찾도록 가르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현재 가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얼마나 더 깊이 행복해하고, 행복을 누리며, 느끼는 감각을 되찾게 해 줄 것이냐가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축구 시합을 하고 온 아이에게 ‘몇 골 넣었니?’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재미있었니?’라고 물어야 합니다. 시험 보고 온 아이에게 ‘시험 잘 봤니?’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과에 만족스러운지?’를 물어야 합니다. 학교 다녀 온 아이에게 ‘공부 잘 했어?’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를 물을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는 재미있었니?’ ‘즐거웠니?’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과와 성과를 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 순간의 삶을 어떻게 느끼고 누리며 살고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결과나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주어진 삶과 충분히 접촉하는 감성적인 아이, 매 순간 깨어있는 아이로 커갑니다.
결과와 성과, 성적과 학벌 위주의 삶은 남들과의 비교로 아이들을 내몰고, 이 세상을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장으로 보게 합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다른 더 잘하는 아이들과 비교당하게 되고, 심지어 형제들과도 비교당하게 되지요. 비교우위가 곧 행복이고, 비교열등은 곧 불행인 남들과의 비교에서만 내 가치가 판단되는 세상에 갇히고 말지요.
그러나 내적인 행복을 느끼고 누리게 하는 삶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의 자기 자신임을 그저 충분히 느끼고 만끽하게 해 줍니다. 남들과의 비교 없이도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성적이나 학벌이나 특정한 결과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 없이, 지금 여기 이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사랑받을 만하며, 온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행복의 조건을 외부에서 끊임없이 찾고 갈구하는 삶이 아닌, 주어진 행복을 내부에서 깨닫고 느끼고 만끽할 줄 아는 본연의 행복감각을 되찾게 됩니다.
그래서 전자의 삶은 머리 중심의 삶이지만, 후자의 삶은 가슴 중심의 삶이기도 합니다. 생존경쟁의 삶에서는 끊임없이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머리에 불을 켜고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머리로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끊임없이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슴 중심의 삶에서는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 순간 오감을 이 세상으로 활짝 열어 가슴으로 느끼면 됩니다. 비교나 판단 없이 모든 친구들과, 심지어 대자연의 모든 것들과 하나되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됩니다. 가슴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지요.
가슴 중심의 어린이는 눈으로 꽃을 보고, 하늘을 보고, 귀로 새 소리를 듣고, 혀로 음식을 맛보고, 손으로 흙을 감촉하는 그 오감의 감각이 활짝 열리고 깨어나게 됩니다.
어떠세요? 우리 아이를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매 순간의 주어진 삶의 신비를 충분히 느끼며 감사해 할 수 있는 행복한 아이로 키워 주세요.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14.5.5, 07:5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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