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내 마음의 평화를 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장백산-1 2022. 2. 7. 16:37

내 마음의 평화를 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일번적으로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부모의 말에 즉각 반응해 주기를 바란다. “아들!” 하고 부르면 아들이 곧바로 “예”하고 뛰어오면 좋겠는데 아무리 반복해서 불러도 게임에 빠져 대답을 안 하면 화가 난다. 이런 현상은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후임 병사를 불렀는데 즉각 반응이 안 오면 후임병이 선임병인 나를 무시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부른는 것에 대한 반응이 그때 그때 재깍재깍 바로 반응이 오지 않아서 괴로운 것은 상대방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의 문제일까? 그건 전적으로 나의 문제다.

 

나 또한 어릴 적에 부모님께 많이 혼났는데, 아버지ㆍ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좋다. 그런데 내가 한참 무언가에 집중해 있을 때는 누가 불러도 잘 못 듣곤 했는데, 부모님께서는 부르면 무조건 듣고 즉각 달려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어른이고 아이고 정신이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서 완전히 집중해 있을 때는 어떤 말도 못 들을 수 있고, 혹은 들었더라도 그 흐름을 깰 수 없어서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한 페이지만 더 읽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은 생각지 않고 다른 일을 시키거나, 당장 시키는 이 일부터 하라고 한 뒤에 즉각 반응이 안 오면 화를 내기도 한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자식을 소리쳐 부르는데 자식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라. 또 자식이 즉각 대답한다 해도 자식은 그대가 시킨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방해받지 말라. 자식에게는 그대의 마음의 평화를 깨뜨릴 힘이 없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바로 그대 자신뿐이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사실 이와 마찬가지다. ‘남편도 자식도 내 뜻대로  이래 주었으면 좋겠고, 일도 잘 풀리고, 부대원들이 말도 잘 들었으면 좋겠다’는 등 수많은 바람이 있겠지만, 어떻게 세상 일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술술 잘 풀리기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처음 불교를 공부할 때는 ‘기도하니까 다 되네’ 하고 정말 신심이 났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를 했는데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생각한 대로 돼야 한다는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삶의 흐름에 내맡기게 되면서부터는 이렇게 돼도 좋고 저렇게 돼도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 뜻대로 돼야한다는 집착과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이길 원하는 것,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야말로 참된 기도임을 알게 됐다.

 

내가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고 소리쳐 부르더라도 세상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 마라. 내 외부에는 내 마음의 평화를 깰 힘이 없다. 내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은 오직 외부가 아닌 나 자신일 뿐이다.

* 국방일보 2015년 3월31일자 <종교와 삶> 이라는 코너에 실린 법상스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