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아닌 것으로 보는 관찰
몸이 나다 라는 '생각' 즉 몸이 나다 라는 '분별심'만 없으면, 몸과 눈앞에 있는 컵이 둘이 아닙니다.
몸은 '나'이고, 눈앞에 있는 컵은 내가 아닌 대상이라는 분별심 자체가 '내 생각'에 불과한 것일 뿐입니다.
그같은 분별심, 생각, 아상, 에고, 아견이 없다면 과연 어떨까요?
느껴지는 어떤 것에 '나'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몸이라고 이름 붙인 이것에 '내 몸'이라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렇게 하면 그저 있는 그대로가 경험될 뿐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몸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바람이라는 이름을 붙인 어떤 현상이 경험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코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들숨과 날숨이라고 이름 붙인 바람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말은 전부가 다 생각이고, 해석이여서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니 말에 사로잡히지 말고 들어주세요.
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바람과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나와 남이라고 둘로 나누어 놓았지만,
사실 '나다' '너다'하는 둘로 나누는 분별심이 없다면, 그냥 그저 공기의 움직임이 감지될 뿐이지 않은가요?
컵이 만져지고, 책이 만져지고, 흙이 만져지듯이, 이 몸도 만져질 뿐입니다.
음식의 향기가 알아지듯이, 내 몸의 땀냄새 또한 그저 알아질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음식의 냄새는 내 밖의 대상 경계이고, 그것은 어떤 음식이라고 이름 붙여서 대상화시킨 뒤에 알아차립니다.
내 몸에서 나는 땀냄새에 대해서는 그저 알아질 뿐이지만, 거기에 해석을 붙여서, '내 몸에서 나는 땀냄새'라고 아상을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습관적인 해석, 아상, 나다하는 생각을 멈추고 바라본다면 그저 보일 뿐이고, 들릴 뿐이지,
거기에 나와 너라는 분별은 없습니다. 그냥 그저 경험될 뿐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 느껴질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중도이고, 팔정도의 정견이며, 명상이고, 위빠사나이며, 지관수행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상타파입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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