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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자로서의 너는 누구냐?

장백산-1 2023. 3. 30. 16:16

보는 자로서의 너는 누구냐?


누가 보는가? 누가 말을 하는가, 누가 생각을 하는가, 누가 행동을 하는가, 누가 보고, 누가 듣고, 누가 맛을  보는가?
과연 이 '보는 놈', 말을 하는 놈, 생각을 하는 놈, 행동을 하는 놈, 듣는 놈, 맛을 보는 놈이 누구인가?

대상을 볼 때는 대상이 보이지만, 대상을 보지 않을 때는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고정된 성품을 지닌 실체적인 '보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언제나 무언가를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대상을 볼 때만 대상이 보이지, 대상을 보지 않을 때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 채로 있다.

단지 대상을 볼 때만 '대상을 보는 자'가 있고, '보여지는 대상'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상을 보지 않을 때 '대상을 보던 자'는 어디에 있으며, '보여지는 대상'은 어디에 있는 걸가?

본다는 인연을 따라서 보여지는 대상이 존재할 뿐,
본래의 자리에서는 '대상을 보는 자'도 없고, '보여지는 대상'도 없다.

다시 묻는다!

'보는 자'가 누구인가? '행동을 하는 자', '말을 하는 자', '생각을 하는 자'가 누구인가?
고정된 실체로써의 '생각하는 자'가 있었다면, 언제나 생각되어지는 대상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할 때만 생각을 하는 놈이 있고, 생각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생각하는 놈과 생각의 대상은 어디에 있는가?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으며, 다만 인연 따라 잠시 잠깐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할 뿐
'보는 자, 듣는 자, 냄새맡는 자, 맛보는 자, 접촉하는 자, 생각하는 자'는 없다.
이것이 무아(無我)의 소식이다.
'나'는 없다. '보는 놈', 듣는 놈, 냄새맡는 놈, 맛을 보는 놈, 접촉을 하는 놈, 생각을 하는 놈은 없다.

인생, 삶을 살고 있지만 '사는 자'는 없다.
없지만 볼 때는 보고, 들을 때는 들으며, 생각할 때는 생각하는 그 놈을 찾으라.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보는 놈'을 돌이켜 찾아 '보라'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고)! 


글쓴이 : 법상